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10일] 중국 신해혁명 발발

혁명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꾼다. 인류 역사에 있어 수많은 혁명이 있었지만 불합리와 모순 불만은 여전하다. 혁명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결하진 못한다. 그래서 혁명은 언제나 미완이다. 혁명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미래진행형인 셈이다. 혁명의 공통적 원인은 대중의 불만, 적자재정, 중과세, 행정적 분규와 혼란, 지식인의 이반, 지배계급의 자신감 상실, 사회적 대립의 격화 등이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중국의 민족자본주의 경제는 비교적 크게 발전했다. 끊임없이 고조되는 반제 반봉건 투쟁 속에서 중국의 민족자산계급은 혁명을 일으켰다. 이게 바로 쑨원(孫文)이 영도한 신해혁명이다. 1900년 의화단 사건 이후 청나라의 유럽열강에 대한 굴종적 태도는 한층 더 심해졌다. 열강에 의한 중국의 식민지화 위기가 고조되면서 자산계급 혁명가인 쑨원은 1905년 일본에서 중국 최초의 정당인 중국혁명동맹회(신해혁명 이후 국민당으로 개편)를 결성했다. 동맹회는 중국 각지에서 수차례의 무장 봉기를 일으켰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1911년 10월10일 호북 무창에서 일어난 군사봉기가 성공하면서 혁명의 열기는 급속도로 발전, 전국을 휩쓸었다. 신해혁명으로 이민족에 의해 건립된 청 왕조의 160여년 통치가 무너졌다. 나아가 2,000여년간 계속된 중국의 전제정치가 막을 내리고 중화민국이 탄생, 새로운 정치체제인 공화정치의 기초가 이뤄졌다. 그러나 자산계급의 역량미비로 혁명 정당은 원천적인 연약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1912년 설날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난징에 성립되고 쑨원은 임시 대통령을 맡음으로써 신해혁명은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해 2월 입헌군주파와 북양군벌 위안스카이의 협공을 받은 쑨원은 임시 대통령직을 물러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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