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아름다운 시절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우리 영화가 국제영화제의 관심을 끌어 국산영화의 장래에 대한 가능성에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때묻지않은 시골 정취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제목과는 달리, 등장인물들의 삶을 아름답게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와중에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비극적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슬픔을 마치 오랫동안 잊었던 추억처럼 보는 사람들의 가슴에 다가오게 해 주어서 아름답다.인간은 기억의 축적을 통해 자아(自我)를 만들어 나간다. 특히 과거의 추억이 인격형성에 차지하는 부분은 매우 크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람의 뇌는 망각이라는 매우 편리한 기능을 가지고 있어,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어느새 잠재의식속으로 깊이 묻어버리고 좋았던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을 떠올리게 하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옛 시절(GOOD OLD DAYS)에 대한 추억은 언제나 우리에게 아련한 그리움을 느끼게 해준다. 삶이 외환위기 이전보다 무척 어려워진 요즈음, 우리는 풍요로웠던 과거를 더욱 동경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최근 「반짝」 회복된 듯이 보이는 경제선행지표들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 십상이다. 6·25이후 가장 큰 국가적 시련을 딛고 일어나야 하는 시점에서 경제여건이 호전되어 가는 것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이 있으랴만은, 어차피 맞을 수 밖에 없었던 위기를 마치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옛 습관에 따라 새봄을 반복하는 식으로 맞이한다면, 정녕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을 걸어 잠궈놓고 나서 우리끼리 「누가 누가 잘하나」하고 로컬 룰(LOCAL RULE)방식으로 살아온 우리에게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에의 적응」이라는 새로운 과제는 이미 선택의 차원이 아니다. 대마불사의 허상에 도취되어 양적 성장만을 추구하며 살아온 경제주체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각 부문의 구조조정과정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하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이미 깨어진지 오래이고 국민 대다수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던 흥분도 가신지 오래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아니 돌아가서도 안된다. 우리나라가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 정상을 회복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새로이 받아들여야 할 방식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것이어야 한다. 경제주체들과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과연 어떻게 구각을 벗고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었는지, 시리도록 아팠던 기억들을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려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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