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노동자의 어머니로 잠드시다


기억도 가물거린다. 18년 전인가 월계동 철거민 천막에서 뵈었던 그분의 모습은 천상 이웃집 할머니였다. 손주들 재롱을 보며 인자한 웃음을 지을 것만 같은 그분이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민가협의 대모인 이소선 여사라고 했을 때 어색했다. "고생하는 사람은 밥을 많이 먹어야 돼" 하며 철거 반대운동을 하던 선배들에게 고깃국을 퍼주던 그냥 이웃집 할머니였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41년 동안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아 오신 그분이 이제 편히 잠드셨다. 그렇게 그리던 아들을 만나러 떠나셨다. 한때 이 여사의 삶 자체가 과격 노동운동의 상징처럼 보였지만 이 여사의 삶은 큰 목소리가 아닌 작은 목소리로 정치적이지 않지만 강하게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다. 소위 운동권이 말하던 노동운동ㆍ계급운동이란 말은 이 여사의 삶을 너무 작게만 보는 것이다. 그분이 살아 오신 길, 그리고 활동은 잃어버린 내 자식 같은 노동자들에 대한 인정이었고 사랑이었다. 가난하고 억눌리고 탄압받는 사람들이 모두 다 이 여사에게는 먼저 간 아들이었고 보살펴야 할 가족이었다. 진보진영에서 이 여사에게 아들보다 열 배, 백 배 더 열성적인 투사로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지도자가 됐다고 하지만 기자는 이 여사의 삶을 애가 타는 모정으로 노동자를, 없는 사람을 사랑한 분으로 기억하고 싶다. 장기표 녹색민주장 창당준비위 대표의 말처럼 "고난에 찬 삶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키웠고,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지혜를 키웠고, 사랑과 지혜를 통해 참된 자유를 실천한 분"으로 기억에 남는다.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은 선영을 찾는 이명박 대통령의 헬기 소리가 귀를 울렸다. 지나가는 말로 이 대통령이 이소선 여사 상가를 찾지 않을까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설마하며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자본주의'와 '공생발전'이란 화두를 던졌듯이 지나간 압축성장의 아픔과도 손을 잡았으면 하는 기대를 했다. 이 여사의 상가에 수많은 사람들의 조화가 왔다고 한다. 이 대통령도 여야 대표들도. 노동자와 기업,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모두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첫 걸음을 내디딘다면 재계 대표의 조화도 자리에 있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은 너무 앞서간 것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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