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3류 규제에 멍드는 휴대폰 강국] <하> 역주행하는 정부

중국은 지원 늘리는데 한국은 족쇄… 경쟁력 추락 시간문제<br>중국 스마트폰 LG 제치고 글로벌 점유율 쑥쑥<br>국내는 규제 탓에 내수 이어 수출전선마저 위협<br>시장 부작용 고려 단말기유통법 재검토해야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어 침체기가 시작됐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휴대폰 강국인 한국으로서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찜찜한 대목이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최근 전 대륙 휴대폰 판매량 1위에 등극하며 한국이 휴대폰 강국이라는 명성을 드높였다. 휴대폰 강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휴대폰이 한국 경제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10월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액이 160억달러를 넘어 월간 최고 실적을 달성했는데 이 중 휴대폰의 비중은 20%에 달한다. 특히 스마트폰은 17억달러로 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하며 수출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국내 단말기 제조사들의 속내는 그리 달갑지는 않다. 정부가 소비자 권익 강화를 명분으로 규제를 강화할 움직임인데다 해외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바짝 추격해오고 있어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이미 중국 스마트폰의 역습은 시작됐다. 한국의 턱밑까지 추격해왔다는 평가가 많다. 다행히 삼성전자가 선전하며 세계 1위 자리를 지킬 뿐 국내 제조사들이 줄줄이 중국 단말기 제조업체에 따라 잡히는 양상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가 올 3ㆍ4분기 스마트폰 판매량을 최종 집계한 결과 LG전자와 팬택이 모두 세계 시장에서 중국 업체에 추월당했다. LG전자는 화웨이·레노버에 이어 5위로 밀렸다. 시장점유율도 4.8%에서 4.7%로 조정됐다. 2ㆍ4분기에 LG전자 순위가 세계 3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한 분기 만에 중국 업체 두 곳에 추월을 허용한 셈이다. 이 기간 120만대를 판매한 팬택은 전 분기까지 세계 14위였지만 새로 등장한 중국 샤오미가 11위(판매량 520만대)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15위로 떨어졌다. 다른 중국 업체 쿨패드와 ZTE도 각각 7위와 9위로 10위권 안에 포진했다. 중국 업체들은 올해 3억대를 넘을 것으로 추정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 1위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강력한 내수시장 수요를 바탕으로 해외시장 점유율 확대를 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가 내수시장 확대에 관여한 조짐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단적으로 중국의 관영방송인 CCTV가 최근 애플ㆍ삼성전자 휴대폰의 품질과 서비스 문제를 지적하는 방송을 내보낸 적이 대표적이다. 해외 언론은 CCTV의 방송 배후에 중국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 단말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중국 휴대폰 기업의 성장에 중국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덕분에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세계 시장의 5분의1을 차지할 정도로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휴대폰 제조사들에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자료를 공개하라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거꾸로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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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휴대폰 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도와주는데 한국은 오히려 낭떠러지로 내모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덕희 KAIST 교수는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 때 정부는 명분을 내세우는 데 급급하지 말고 관련 산업에 미치는 다양한 부작용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중국의 경우 정부가 나서서 자국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덕분에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중국 스마트폰 영향력이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휴대폰이 수출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높다. 그러나 단말기 제조사들은 정부가 규제를 강화한다며 이 같은 성과는 급속히 위축될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기여도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단말기 제조사들이 국내 생산능력 확충에 나서야 하는데 매출 3%의 과징금을 내야 할 정도로 규제의 벽이 높아지면 국내시장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단말기 제조업체의 속사정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국내에서 생산한 휴대폰 수출 실적은 5년 사이에 이미 반토막 났다. 휴대폰 완제품(부품 제외) 수출 실적은 2008년 221억달러를 정점으로 2009년 181억달러, 2010년 153억달러, 2011년 151억달러, 2012년 121억달러로 5년 동안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삼성전자 등 제조업체들이 국내의 내부적인 이유로 생산을 줄이고 해외생산을 대폭 확대한 영향이다. 중국의 경우 정부가 직접 지원에 나서며 내수시장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정부가 단말기 유통시장 정상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법안을 강행한다면 단말기 제조사들의 걱정은 현실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더 나아가 글로벌 경쟁력의 밑받침이 되고 있는 국내시장을 위축할 규제강화는 재검토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지금 당장은 삼성전자가 세계 1위라는 명성으로 휴대폰 강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미 중국의 역습으로 LG전자와 팬택 등 나머지 국내 제조사들은 중국 업체들에 밀리는 상황"이라며 "이런 시점에 글로벌 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국내시장을 왜곡할 위험성이 높은 법안 추진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규제강화로 국내 단말기 제조사들이 국내에서 설 자리를 완전히 잃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팬택의 위기가 대표적이다. 만약에 중국 휴대폰 제조사가 팬택이라도 인수하거나 연구개발 인력을 대거 흡수할 경우 국내 휴대폰 산업의 경쟁력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글로벌 업체로서의 위상을 지키고 있지만 LG전자의 추락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중국 업체들이 그동안은 LG전자 추격에 집중했지만 앞으로 삼성 견제에 집중할 경우 삼성은 물론 한국 경제 전반에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시장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규제강화를 정부가 다시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단말기 제조사 관계자는 "글로벌화의 영향으로 휴대폰의 국내 생산비중이 축소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지만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강화한다면 이 같은 움직임이 가속화돼 정부 스스로 수출 한국의 위상을 흔드는 꼴이 될 것"이라며 "일본이 국내 휴대폰 시장 규제에 나섰다 지금까지 애를 먹는 것처럼 우리도 결국에는 글로벌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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