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로 안전 투자 선호도가 높아지며 미 국채 가격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위험투자를 즐기는 헤지펀드마저 위험상품을 떠나 안전투자로 돌아서고 있다.
23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헤지펀드와 원유 투기세력들은 유가 상승을 전망하는 '롱 포지션'을 대거 축소하고 있다. 휘발유 선물시장에서 지난주 순(純) 롱 포지션은 74% 축소됐다. 지난 2006년 10월 이후 4년 만에 최대폭으로 줄인 것이다. 롱 포지션은 올 들어 80%가 줄었다.
롱 포지션 축소는 원유 상승에 베팅해 온 헤지펀드가 원유 투자로 손실을 입고 자금 회수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 휘발유 가격은 최근 12일 연속 하락했으며 올 들어 하락폭은 6.2%에 이른다.
자동차 사용이 최고조를 기록하는 여름 휴가철이지만 휘발유 재고량이 줄기는커녕 지난 1990년 이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 헤지펀드가 손실을 기록한 원인이다. 한 원유 선물중개업자는 "헤지펀드와 투기세력이 앞으로 원유 선물 거래를 지속적으로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유가가 배럴당 68~70달러 선 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헤지펀드는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신흥 증시에서도 발을 빼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2ㆍ4분기 신흥시장에서 순 유출된 헤지펀드 자금은 15억 달러에 이른다. 헤지펀드 자금의 급격한 이동은 신흥 증시의 변동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헤지펀드마저 위험 상품을 멀리하는 것과는 반대로, 채권 상품엔 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되고 있다. 채권형 펀드에 유입된 자금은 지난 1999~2000년 닷컴버블기 주식형 펀드에 유입된 자금을 추월하기 직전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채권에 주로 투자하는 뮤추얼펀드에는 최근 2년간 4,802억 달러가 유입됐다. 이는 닷컴 버블기 주식형 펀드에 유입된 자금(4,969억 달러)에 버금가는 규모다. 채권 시장에 대한 자금유입으로 채권 수익률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투자 적격 등급의 회사채 금리는 역대 최저인 3.79%까지 하락한 상태다.
증시에서 돈이 빠져 채권 쪽으로 급속히 이동하는 가운데 미 국채의 '거품'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만기 20년 이상의 미 국채가 올 들어 21% 수익을 기록한 반면 주식은 다우존스 지수 기준으로 2% 손실을 냈기 때문에 갈아타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면서도 미 국채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추후 인플레이션이 가시화되면 원금 보존 때문에 국채 투매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WP 스튜워트 앤드 코의 마크 펠프스 최고경영자(CEO)는 "증시가 전반적으로 부진해도 배당이 좋은 블루칩이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돈을 모두 미 국채에만 집어넣는 것은 실수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티그리스 파이낸셜 그룹의 아비 티옴킨 투자책임자는 "기업이 배당하려면 수익을 내야하는데 지금의 경기 상황은 그렇지가 못하다"면서 "10년 물 국채 수익률이 2%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1년 안에 1%로 더 주저앉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