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악몽이 떠올라!”
국내 굴지의 대기업 정보파트에 근무하는 한 부장급 간부는 최근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3년 전, 정확하게 3년1개월 전 무슨 일이 있었던가.
참여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2003년 2월17일 검찰은 전격적으로 재계 4위의 SK그룹 본사와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노무현 정부의 재벌개혁에 신호탄이 올랐다고 본 재계는 정보망을 총동원하며 정권의 의중을 파악하느라 부심했다.
그리고 압수수색 일주일 만에 SK의 총수인 최태원 회장이 구속되고 검찰의 칼이 재계 전체로 옮겨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재계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이라크전을 앞둔 미국이 초기제압을 공언하며 내세운 ‘군사작전명’이 2003년 한국 경제계를 풍미한 것이다.
구체적 사건내용과 처한 환경은 3년 전과 확연히 다르지만 김재록 게이트로 검찰이 재계 2위의 현대차에 들이닥치고 상당수 다른 기업으로의 수사 확대를 공언한 2006년 3월 한국 기업의 불안감은 3년 전과 많이 닮아 있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정권 중간의 갑작스러운 사정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재계의 놀라움은 더 큰 것 같다.
딱하게도 시원한 답을 줄 수 없었으나 앞서 대기업 간부가 전화를 한 것도 충격 속에서 사정의 배경과 향후 추이에 대한 정보에 목말랐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재계에는 “다음 타깃이 O그룹이다”는 등의 사이렌이 급속히 퍼져가고 있다.
기업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의 덫에 스스로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리스크가 큰 투자를 감행하며 일자리 창출에 나설 리 만무하다. 공포에 넋이 나가 있다 보면 3년 전 SK의 위기를 틈타 1조원 가까운 이익을 챙기고 떠난 소버린의 값비싼 교훈을 또 되새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비리는 철저히 파헤쳐야겠지만 수사에 정치적 의도나 다른 배경이 있다면 철저히 배제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찰로서도 “어렵사리 살려놓은 경기회복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을 피하려면 불확실한 정보를 누설해 불안을 조성하거나 무리한 수사로 기업인들을 옥죄는 부작용은 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