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실기업 처리 정책/송대희 국민경제교육연 소장(시론)

금년 2월에 일어난 한보 부도사태 이후 최근의 기아사태에 이르기까지 부실기업처리에 관한 정책주문이 정책당국에 수없이 쇄도하였다. 특히 기아와 같은 일종의 응급환자 처리가 지지부진하고 진로, 대농 등 부도유예협약의 보호를 받았던 기업들이 협약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그 회생이 불투명해지자 한국경제의 장래에 관하여 많은 국민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정부가 무슨 특단의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부실기업의 암울한 기류가 즐거운 추석명절의 분위기마저 답답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부에 대하여 특단의 조치를 주문하는 정서를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정부에 특단의 조치를 주문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우선 정부가 나서서 속시원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지루하고 답답하더라도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치유책일 수 있다. 우리 몸의 상처가 아물기까지 참으로 답답하고 지루한 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붕대를 일찍 푼다거나 상처딱지를 손으로 떼내어서는 안된다. 끝까지 기다려야 상처의 치유가 온전하게 된다. 그러나 치유과정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때도 있다. 잘못된 치유방법은 당장 고쳐야 하고 치명적인 부작용은 시급히 해소시켜야 한다. 지금 우리 정부는 목하 부실기업의 부도사태에 대하여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특단의 조치를 취하여야 하는가. 아마도 국민들의 정서는 정부가 무슨 조치를 취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정부가 이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직접적 조치로 정부가 부도현장에 뛰어들어 부도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간접적 조치로 시장환경을 개선함으로써 부도사태가 당사자간에 해결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정부가 직접 부도현장에 뛰어들어 사태를 수습하는 첫번째 방안은 이미 우리에게 가능하지 않은 정책수단이 되어버렸다. 과거 1970∼80년대의 정부 주도적 개발연대 기간중 정부는 이러한 직접적 방법으로 부실기업을 정리하여 왔다. 부실기업 정리시 주어지는 세제, 금융상의 지원에 대해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조치라는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조세감면규제법에 의한 산업합리화조치는 1980년대 전반에 일곱 차례, 1980년대 후반에 다섯 차례에 걸쳐 수많은 부실기업을 정리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민간주도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면서 특혜금융이나 조세감면 등에 의한 인위적 부실기업 처리는 우리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게 되었으며 국민들도 그러한 조치에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부실기업 처리에 대한 청문회 개최와 관련된 당사자들의 재산권 반환청구 소송 제기는 그러한 조치가 우리 사회에 이제 더 이상 수용될 수 없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정부의 직접적 개입은 우리 스스로도 거부하는 추세에 있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바깥 세상으로부터도 강한 제지를 받게 되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에 서는 특정기업의 정부에 의한 직접적 재정금융 지원은 통상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객관적 준칙에 의하지 않고 특정산업에 대한 보조금은 이제 국제경제질서상 반칙에 해당한다. 따라서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첫번째 방법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두번째 방법, 즉 부실기업 문제의 시장경제적 해결을 촉진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정부에 의해 취해지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다. 시장환경개선을 위한 조치에는 진입 및 퇴출장벽의 제거,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파산 및 법정관리 제도의 개선, 기업인수 및 합병(M&A) 활성화 유도, 행정규제 완화 등이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제도개선은 관련 이익집단의 심한 반발에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조치를 취했다가도 번번히 뒤로 물러섰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두번째 특단의 조치는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부실기업처리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면 이 길밖에 없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조치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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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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