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장관직을 꺼린다고?

권홍우 <정치부장>

[데스크 칼럼] 장관직을 꺼린다고? 권홍우 영국의 귀족과 정치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서 웰즐리 웰링턴 장군의 워털루 전투 승전을 기념하기 위한 연회의 흥이 달아오를 무렵 작은 소동이 일었다. 공작부인 한사람의 다이아몬드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 제의했다. ‘신사들은 자신의 소지품을 꺼내놓읍시다.’ 단 한사람이 거부하고 나섰다. 가장 볼품없는 옷차림으로 구석에 있던 사내, 장병 초청 케이스로 파티에 참석한 중년의 하사관이었다. 주머니까지 두툼해 의심을 받았지만 그는 결백을 주장하며 옷의 내용물을 밝히지 않았다. 분위기가 엉망으로 변한 무도회장을 떠나는 그에게 웰링턴이 한마디를 던졌다. “자네에게 실망했네.” 몇개월 후 진실이 밝혀졌다. 다이아몬드는 공작부인의 드레스 실밥 속에 끼어 있었다. 사실을 보고받은 웰링턴은 퇴역한 하사관을 불렀다. “왜 호주머니를 꺼내보이지 않았나.” “실은 제 바지 주머니와 옷 속에는 베이컨이 있었습니다. 배불리 먹어보지 못한 자식들에게 주려고 그랬지만 대영제국의 군인이 파티장의 음식을 손댔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싫었습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도둑의 누명까지 감내했다는 얘기다. 웰링턴의 눈에 물이 고였다. 나폴레옹전쟁 이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영국의 밑바닥에는 하급 군 간부까지 명예를 중시했다는 공직풍토가 깔려 있다. 하사관의 명예와 장군의 눈물 지난 1905년 도쿄. 러ㆍ일전쟁 승전보고대회에서 군중은 목을 빼며 영웅을 기다렸다. 주인공은 노기 마레스케 육군 대장. 노기는 기대와 달리 허름한 야전군복을 걸치고 노새를 타고 나타났다. 러ㆍ일전쟁의 분수령인 여순고지 전투에서 이겼지만 6만명의 전사자를 냈다는 죄책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의 아들 2명도 전사자 명단에 끼어 있었다. 노기는 메이지 왕 앞에서 ‘소중한 황군 6만명을 잃은 죄’를 씻기 위한 할복자살을 허용해줄 것을 간청했다. 메이지유신과 함께 사무라이의 자살이 금지된 터. 메이지는 ‘짐의 생전에는 할복할 수 없다’는 명령을 내렸다. 왕이 내린 막대한 내탕금을 부하들의 유족에게 모두 나눠준 노기는 대학교 총장으로 말년을 지낸 후 1912년 메이지가 사망하자 할복으로 삶을 마쳤다. 노기의 부인도 음독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미야모도 무사시, 도고 제독과 더불어 일본의 3대 군신의 하나로 존경받는 노기의 삶과 죽음에는 엄정함과 명예, 자존심, 인간에 대한 애정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웬만한 집안이면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원정출산까지 일삼는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소들이다. 러ㆍ일전쟁 승리 이후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윗물도 아랫물도 혼탁한 한국 최근 4명의 장관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명예나 인간적 죄책감 때문이 아니다. 청탁이나 투기와 관련된 사안 탓이다. 의혹이 불거지면 강력하게 부인하고 나서지만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더 큰 의문이 꼬리를 물고 나와 결국 사퇴하는 과정도 한결같다. 본인들은 ‘마녀 사냥식 여론몰이’로 여기겠지만 중요한 것은 공직자의 마음 자세다. ‘명예’도 갖고 공직을 기반으로 재산도 형성하려는 공직자가 생명력을 유지하는 사회가 잘된 사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찾을 수 없다. 어디 윗물뿐이랴. 노동조합이 사원을 채용하는 과정에 압력을 넣어 돈을 챙겼다는 뉴스는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안될 만큼 우리 사회의 하부구조도 혼탁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그랬고 부산 항만노조가 그랬다. 기업주의 횡포를 막고 비리구조를 감시해야 할 노조마저 돈과 청탁에 물들었다면 그 사회의 청렴ㆍ건강지수는 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당사자들도 할말이 없지 않다. 개개인의 면면을 보면 아까운 점도 많다. 오죽하면 청와대 인사수석이 28일 “많은 분들이 인격적으로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장관에) 임명되길 꺼린다”고 말했을까. 여론의 검증이 워낙 까다로워 장관직을 맡으려는 사람을 물색하기 어렵다는 말로 들린다. 아픔이 없는 역사의 발전은 없다. 더러는 인사검증시스템의 보완을 말하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사회 전반에 흐르는 명예의식과 도덕률의 회복이다. 한두사람의 장관직을 던져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부귀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에 다가섰다면 인재를 도려내는 아픔은 결코 아픔이 아니다. 인사 잡음 저 너머에 희망이 보인다. hongw@sed.co.kr 입력시간 : 2005-03-2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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