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간에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던 1997년 대선의 각종 비화가 낱낱이 공개됐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였던 이강래 민주당 전 원내대표(전북 남원ㆍ순창 3선)는 10일 기자들과 만나 DJ가 1992년 대선 패배 이후부터 1997년 대선승리까지 자신이 기획하거나 접했던 각종 역사적 사건을 털어놨다. 1997년 대선일을 딴 ‘12월 19일’이라는 책에서도 비사를 관련자들의 실명을 달아 증언한그는“선거는 구도, 후보 경쟁력, 상황에 좌우되며 전략과 기획에 따라 이 변수들이 달라진다”며 “당시 DJ가 불리한 여건을 딪고 유리한 구도와 상황을 만들어냈는지를 보면 내년 대선의 길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DJ가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권토중래를 노릴 때 늘상 곁에서 보좌했던 그는 “4번째 대선에 도전하시면 된다”고 격정적으로 건의하자, DJ가“호남에서 태어난게 무슨 죄냐. 강원도나 다른데서 태어났으면 됐을텐데…”라며 눈물을 흘려 같이 통곡을 했다고 소개했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한 뒤 DJ가 국민회의를 창당하자 강하게 반발했던 이 의원은 “1996년 총선에서 여권에 패한 뒤 ‘DJ 회의론’이 팽배할 때 김종필 전 총리(JP)가 한 주간지 인터뷰에서 ‘총선에서 성과가 좋지 않으면 다른 후보를 밀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을 보고, DJP 전략을 DJ에게 건의해 성사시켰다”며 “박철언, 박준규, 박태준 등 당시 자민련의 TK세력이 많이 도와줬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대선 과정에서 중대 분수령이었던 DJ비자금 의혹설과 총풍 미수사건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술회했다. 그는 “김영삼(YS) 대통령 측의 김광일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인간적 신뢰를 바탕으로 핫라인을 가동해 YS의 정치적 중립을 끌어냈다”며 “당시 여당에서 터무니없는 DJ비자금의혹을 제기해 수세에 몰렸지만 검찰 불수사 결정으로 위기를 넘겼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어“대선 직전 안기부 전 차장으로부터 “안기부가 북한 측에 ‘휴전선에서 2~3개소대가 총을 쏴달라’고 공작을 한다”는 긴급제보를 받고 당에서 북한과 안기부에 대해 경고하고, 미국측에 협조를 구해 소위 총풍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밖에 당시 여당 측의 이인제 후보 주저앉히기 공작에 대한 대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들의 병역의혹 이슈화 등도 자세히 털어놨다. 이 의원은 마지막으로“올 연말 민주당 전대에서는 지도부에 입성해 내년 총선, 대선의 승리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