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4월 24일] 와인 제값 주고 사면 바보?

직장인 조호준씨는 얼마 전 백화점에서 열린 ‘와인 창고 대방출’ 행사에서 와인 한 박스를 구입했다. 김씨는 “몇달간 마실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 마음이 뿌듯하다”며 “대신 앞으로 정상가로 판매하는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의 와인매장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불황으로 와인 열풍이 한풀 꺾이면서 백화점과 대형 마트, 와인숍마다 할인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이달 백화점들이 실시한 와인 창고 대방출 행사는 최대 90% 할인된 가격에 와인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처럼 와인 할인행사가 줄을 잇는 가운데 와인 수입업체들은 올 들어 환율상승을 이유로 인기 와인의 가격을 일제히 올렸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칠레 와인인 ‘몬테스 알파’의 가격은 3만8,000원에서 4만7,000원으로 24%나 올랐고 ‘1865’ ‘빌라M’ ‘에스쿠도 로호’ 등 이른바 스타급 와인들도 줄줄이 가격이 인상됐다. 한편에서는 가격파괴 행사를 벌이고 다른 편에서는 잘 나가는 와인들의 가격을 올리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와인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제값 주고 와인을 사면 바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평상시 정상가격으로 와인을 구입하기보다는 창고 대방출이나 세일 때 대량으로 구입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무분별한 와인 할인 행사와 와인 수입사들의 들쭉날쭉한 가격정책은 결국 와인업계에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할인행사는 당장 재고를 처분하고 매출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 와인 애호가는 “한번 싸게 구입한 와인을 다음에 그 이상의 가격으로 선뜻 구입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국 제값을 주고 와인을 구입하는 풍토가 정착돼야 와인 업계도 장기적인 이득을 볼 수 있고 소비자들도 제품과 기업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 가격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할인행사를 무턱대고 늘리기보다 와인의 정상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려는 노력이 먼저 필요해 보인다. 백화점들은 신사복 가격의 거품을 빼 가격을 낮추는 대신 세일을 자제하는 ‘그린프라이스’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가격거품을 제거해 그 이득을 소비자에게 돌려주고 가격의 신뢰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와인시장에도 이 같은 그린프라이스 바람이 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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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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