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10월 23일] '나스레딘의 냄비'가 된 키코

천 년 전 이슬람의 현자로 알려진 나스레딘 호자가 어느날 이웃집 여인 파티마의 대문을 두드렸다. 음식을 하는데 필요한 냄비를 하나 빌려달라고 부탁하자 이웃집 여자는 중간 크기의 냄비 하나를 빌려줬다. 다음날 나스레딘은 빌린 냄비 속에 작은 냄비 하나를 넣어 이웃집에 돌려줬다. 파티마는 “작은 냄비는 제 것이 아닌데요”라고 말하며 의아해 했다. “지난 밤 당신 냄비가 자식을 낳았어요. 당신 냄비 딸이니 당연히 당신 것이죠.” 이웃 여자는 나스레딘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면서도 작은 냄비를 얻게 되자 기뻐했다. 사흘 후 나스레딘은 다시 이웃집 대문을 두드렸고 파티마는 제일 크고 좋은 냄비를 빌려줬다. 파티마는 또다시 덤으로 냄비 하나를 얻고 싶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나스레딘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자 걱정이 되기 시작한 파티마는 결국 옆집을 찾아가 나스레딘에게 냄비를 돌려달라고 말했다. “잊은 게 아닙니다. 나쁜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서…사실 당신 냄비는 밤에 해산을 하다가 끔찍한 고통 속에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나스레딘의 말에 파티마는 기가 막혀 소리를 질렀다. “날 놀리는 거예요? 냄비가 죽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불행하게도 자식을 낳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죠. 당신이 첫 냄비의 해산을 인정했다면 둘째 냄비의 사망도 인정하셔야 합니다.” 나스레딘은 결국 큰 냄비를 돌려주지 않았다. 아득한 옛날의 이 우화가 다시 생각난 것은 최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환위험 회피상품 키코(KIKO)의 손실을 놓고 책임 문제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구조의 투기성 파생상품인 키코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력적인 환헤지상품이었다. 원ㆍ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제품을 수출해봐야 환차손으로 날려야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보통 0.5~2% 정도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선물환과는 달리 아예 수수료자체가 없다는 키코는 환상적인 금융상품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외국에서 프로그램을 사들여와 중간판매만 해도 엄청난 무위험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은행들로서는 무리한 실적경쟁과 과장 마케팅에 몰입할 소지가 충분했다. 문제는 원ㆍ달러 환율이 지금처럼 폭등할 것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환율이 약정범위를 넘어서면 계약금액보다 2~3배나 되는 달러에 대해 환차손을 떠안아야 되며 중도 해지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높은 환율로 처리해줘야 하는 만큼 앞으로 환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보는 중소업체들로서는 쉽게 털어버리기도 어려운 상태다. 정체불명의 파생상품을 판 외국은행들에만 엄청난 환차익을 안겨준 셈이다. 또다른 문제점은 키코가 금융당국에 사전승인을 받거나 사후보고를 할 필요가 없는 장외 파생상품이었다는 점이다. 대략 700여 기업이 가입해 최근 환율을 기준으로 하면 4조~5조원의 손실이 날 것이라는 추산이지만 환율급등으로 키코사태가 심각해진 이후에도 금융당국이 손을 놓고 있다가 최근에야 중소기업의 흑자도산을 막기 위해 뒤늦은 지원대책을 내놓게 된 것도 뒷북조치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나스레딘의 냄비라는 우화에서 보듯 결국 투자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본인에게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수료가 없다는 유혹과 신용대출을 연장해주겠다는 조건 등을 내세워 투기성 파생상품의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마진 챙기기에 급급했던 은행의 책임이 가장 막중한 것은 물론이다. 또한 아무런 감독기능도 발휘할 수 없는 고위험상품을 방임해온 금융당국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앞으로 제2, 제3의 키코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시장 참여자들은 물론이고 금융감독기관마저 쉽게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파생상품에 대한 감독기능의 강화가 시급할 정도로 우리 금융시장이 무방비로 개방돼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우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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