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다 죽는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일생의 주기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루를 살고 죽는 하루살이부터 400년을 산다는 거북이에 이르기까지 길이의 차이가 있을 뿐 생명에게는 똑같이 주어진 운명이다.
스스로의 운명이라는 것을 의식하며 자기 의지로 그것을 바꾸는 능력까지 지닌 인간은 생명 가운데서도 특별한 존재이지만 나고 죽는 운명만큼은 바꿀 수가 없었다. 죽음을 거부하려는 역대 모든 인간들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그토록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건만, 한편에는 스스로 죽음을 앞당기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 원인 가운데 자살의 비율도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죽음을 피하고 싶어 온갖 수단을 다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죽고 싶어 안달인 사람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몸에 좋다는 모든 것을 찾아 다니고 어떤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죽음 앞에 몸을 내던진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죽음에 대한 이 두 가지 태도는 서로 상반돼 보이지만 근본은 같다.
죽지 않으려는 사람이나 죽으려는 사람이나 가장 솔직한 공통의 소망은 `즐거움이 지속되는 행복한 삶`일 뿐이다. 즐거움이 지속되는 행복한 삶을 위하여 평범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생은 그러한 노력의 과정 자체로 끝을 맺고 만다. 과정은 있지만, 이제부터 즐거움이 지속되는 행복한 삶이 시작됐다고 믿어지는 성취의 단계를 맛보기란 실로 어렵다.
진정한 행복의 성취란 어떤 단계를 말하는 것일까. 많은 철학자들은 그것이 결코 물량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물질적 소득이나 지위, 명예의 획득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현인들이 말한 행복의 조건은 `안분지족(安分知足)`,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이다. 죽음을 거부하는 것이나 재촉하는 것이나 우주 안에 던져진 한 생명의 욕구로서는 모두 분수를 넘는 오만일 뿐이다. www.daehwadang.co.kr
<이은주(대화당한의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