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4월 23일] 그룹 운명 건 삼성의 고강도 경영쇄신안

삼성그룹이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내놓은 경영쇄신안은 그룹 안팎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이미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직후 자신의 거취까지도 포함한 쇄신안 마련계획을 밝혔던 만큼 고강도 조치가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그 내용과 범위가 생각보다 넓고 깊다. 그룹의 운명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획기적인 내용은 이 회장을 비롯해 그동안 삼성을 이끌어온 핵심 경영진이 일괄 사퇴하고 경영의 사령탑격인 전략기획실을 해체한 것이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회장직은 물론이고 문화재단 이사장 등 삼성 관련 일체의 직에서 퇴진한다. 부인 홍라희씨도 리움미술관장직에서 물러나며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고객총괄책임자(CCO)에서 물러나 핵심에서 한발 비켜선다. 전략기획실이 해체되고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은 업무를 정리하는 대로 물러난다. 은행업 진출의사가 없음을 강조하는 한편 문제가 됐던 차명자금은 실명전환 후 유익한 일에 사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사건에 연루된 오너 가족과 핵심 경영진의 퇴진과 그룹 경영의 심장부 해체 등을 통해 인적ㆍ조직 쇄신은 물론이고 사업구조와 사회공헌 활동까지 밝힌 셈이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 회장 쇄신안은 한마디로 지배구조와 경영 및 사업전략, 개인재산 운용 등에서 조금이라도 오해를 살 만한 소지를 최대한 없애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후계구도는 당분간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한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를 강화하면서 이 전무의 경우 시장개척 등 일선업무를 통해 경영능력을 철저히 검증함으로써 경영권 승계의 잡음과 부정적 시각을 해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은행업 진출의사가 없고 직무상 연관이 있는 인사들을 사외이사에 선임하지 않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삼성의 은행업 진출설이 끊이지 않았고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 등으로 여건도 유리해졌다. 그러나 은행업을 할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밝힘으로써 금융지배 등 불필요한 의혹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삼성의 이번 쇄신안은 경영투명성 제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거의 다 한 것으로 평가된다.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나려는 강력한 의지이자 지배구조와 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고는 초일류기업이 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이 차지하는 위상에 비추어 이번 조치는 다른 그룹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기업들의 경영관행을 변화시키는 일대 전기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쇄신안이 파격적인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제대로 옮겨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앞으로의 최대 관심사는 이 회장 없는 삼성호의 미래다. 창업 이후 계속돼온 오너 경영이 막을 내리고 계열사 중심의 전문경영인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삼성은 성공적인 오너 경영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오너 경영에 대한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을 발휘한 오너 경영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ㆍ휴대폰 등 첨단산업은 오너의 결단과 추진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강력한 오너에 의한 그룹 중심 경영에서 전문경영인에 의한 계열사 자율경영 방식으로 전환하게 됐다.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삼성이 이 같은 도전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오너 경영 시스템을 뛰어넘는 효율적인 전문경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동안에도 계열사별 자율경영이 상당 정도 정착돼왔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 회장의 비중과 영향력이 워낙 컸기 때문에 공백을 메우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경영쇄신안이 발표된 뒤 삼성그룹 주가가 일제히 하락한 것은 경영불안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또 장기간 특검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상당한 경영공백과 기업 이미지 추락 등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전문경영진을 비롯한 삼성의 모든 임직원들은 위기의식을 갖고 이번 사태를 세계 일류 삼성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새 삼성에 성원 아끼지 말아야 국민과 정부도 삼성이 지금의 위기상황을 무사히 넘기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일류기업이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번 특검을 계기로 그동안 삼성이 안고 있던 모든 의혹이 말끔히 해소됐고 이 회장은 경영일선 퇴진이라는 초강수를 통해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무한경쟁 속에서 기업의 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반기업정서 또는 반삼성정서에 얽매어 기업을 매도하는 것은 우리 경제를 해치는 일이나 다름없다. 국가경제력은 경쟁력 있는 기업이 얼마나 많으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기업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삼성이 투명성 등에서 다소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더 이상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제 세계를 무대로 마음 놓고 뛸 수 있도록 성원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룹의 운명을 건 이번 경영쇄신안을 계기로 삼성이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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