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번 정상회담 발표는 극소수의 정상회담 추진 인사를 제외하고는 발표 당일까지 극비리에 추진됐다. 물론 그동안 정치권에서 8ㆍ15 광복절을 전후한 정상회담 개최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번 발표는 과거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극비리에 추진한 것과 같은 ‘깜짝 발표’ 형식을 취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개최일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전격적으로 발표됐다는 점에서 개최의도에 대한 의구심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던 터였다. 더욱이 우리 정부와 북측이 북한의 대규모 수해피해를 이유로 당초 8월 말로 예정돼 있던 일정을 10월 초로 연기함에 따라 정상회담 개최의도와 논의 내용에 대해 정치권, 특히 한나라당은 더욱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범여권의 대선 예비후보들은 정상회담 발표 직후 저마다 북한 방문 및 김정일 면담 전력 등을 집중적으로 부각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정상회담의 대선 파급력에 대해 예의주시하며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정상회담 이후 발생 가능한 정국상황의 변화로 10년 만의 정권교체 기회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0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명박 후보는 “남북정상회담이 대선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일을 해서도 안되고 그럴 경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을 둘러싼 가장 핵심적 논란은 대선에 미칠 영향일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역시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와 ‘미치지 않을 것이다’가 대등한 수준으로 나타난 바 있어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의견 또한 양분된 상황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우리의 국내정치 상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과거 ‘북풍사건’처럼 국내정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이러한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의미 있는 정상회담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정상회담의 투명한 추진이 전제돼야 한다. 사실상의 정권교체를 3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정부가 정상회담을 통해 각종 이면합의를 남발한다면 이는 차기정권에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 정당성에도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대북관계에 있어 정권의 치적을 위해 단기간에 효과를 보려고 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이 같은 자세는 결국 북한에 대한 맹목적 지원으로 귀결되곤 했으며 대북 ‘퍼주기’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붕정만리(鵬程萬里)의 장기적인 관점으로 ‘상호’ 교류 증대를 유도해 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서독의 사례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