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현대그룹:13/미 심비오스 로직(한국기업의 21세기 비전)

◎철저한 자율경영·근로자복지 확대·한국서 기술연수/반도체 새 강자 “자리매김”/94년 인수후 내실주력 연 20% 성장/「컴퓨터 입출력 칩」 세계시장 1/3 점령/신규 설비투자도 박차… “곧 기업공개” 청사진그들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걱정은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바뀌어 갔다. 94년 11월 현대전자가 AT&T사의 비메모리부문을 인수한다고 발표했을때 피인수회사의 직원들이 술렁거렸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외국기업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는데 대한 일종의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행여 일자리를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한국 기업의 밀어부치기식 경영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인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피인수회사의 직원을 전원 고용했고, 미국인 경영자들에게 최대한의 자율권을 보장하면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회사 이름도 인수회사인 「현대」라는 로고를 사용하지 않고 직원의 공모로 「심비오스 로직」이라는 정했다. 이 회사의 짐 패터슨 사장은 『현대가 인수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처음에는 무척 신경이 쓰였다』고 술회하면서 『그러나 현대는 현지 경영인에 대해 충분한 자율성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화는 곧 현지화」라는 논리가 시험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현장이 바로 현대전자의 미국 현지기업 심비오스 로직이었다. 덴버 국제공항에서 북쪽을 향해 두어시간 달리면 포트콜린스라는 도시가 나타난다. 광활한 미국 중부의 프레이리 평야지대가 끝나고 북미대륙을 관통하는 로키산맥과 접해있는 곳에 촌락이 옹기종기 나타난다. 서부개척 시대에 금광을 찾아 나선 유랑객들이 산맥 기슭에 마차를 세워두고 정착한 콜로라도의 자그마한 마을 중 하나가 포트콜린스다. 지도를 보았지만, 몇번이고 길을 헤멘 끝에 한적한 주택가 한복판에 「심비오스 로직」이라는 간판을 발견했다. 이런 곳에 한국 기업이 진출해있다는 것은 믿기지 않았다. 심비오스 로직은 제조공장이라는 느낌이 전혀들지 않는다. 마치 연구소와 같아 아담하게 가꿔진 회사 입구에 들어서 사장과 만날 약속을 하고 방문했다고 하니, 수위쯤 되는 사람이 친절히 방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그러고나서 그는 서투른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며 인사말을 건넸다. 그제서야 이곳이 한국기업이 인수한 회사임을 새삼 깨달았다. 모기업인 현대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치중하고 있지만, 심비오스 로직은 메모리보다 기술적으로 한단계 우위에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인수당시 4억4천만달러였던 매출은 95년 5억2천만달러, 지난해엔 6억달러 가까이 늘어났고, 올해는 7억달러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인수한후 외형이 늘어난 것은 시장 여건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면적인 기업운영이 원활한데 눈길이 간다. 하이테크 산업에서 자산은 기술이요, 이를 보유하고 있는 기술자다. 현대전자가 미국의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공장 인수에 3억4천만달러(한화 2천7백억원 상당)을 지불한 것은 축적된 기술을 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메모리 반도체는 낮은 기술로도 생산이 가능하지만, 비메모리 반도체는 집적도가 높아 디자인이 복잡하고, 주문자의 까다로운 요구에 따라 하나하나 설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을 가진 인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축적된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지 경영인과 기술자에 대해 자율성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창시이사는 『현대전자가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세운 원칙이 「현대」라는 큰 틀 속에서 최대한으로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한국기업들이 해외에 기업을 세울때 대부분 현지법인 사장을 본사에서 파견하는게 대부분이지만, 현대는 피인수회사의 이사진 중에서 짐 패터슨씨를 사장겸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패터슨 사장은 『기업인수는 사람과 자산을 사고, 이를 유지하는 것인데, 현대가 이를 재빨리 파악했다』면서 『현대는 인수후에도 경영진은 물론 기술자, 지원부서, 고객들을 고스란히 유지했다』고 말했다. 패터슨 사장 스스로가 자율을 강조하는 경영인이었다. 사명도 「현대」라는 모기업의 이니셜을 넣을 것인가, 새로운 이름을 지을 것인가를 직원들에게 물어 심비오스 로직이라고 정했다. 그리고 노조와의 타협을 이끌어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노조는 인수후 얼마 안돼 해산했다. 노조원 대다수가 노조를 해산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돌아갈 복지혜택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지 경영인에 의한 자율 경영은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인수후 연간 20·의 매출신장을 냄과 동시에 지난해 6천3백만달러의 경상이익을 낸데 이어 올해 7천5백달러의 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재무구조가 건실해지면서 포트콜린스에서 자동차로 3시간여 거리의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신규 설비를 설치했는데, 이때 설비자금은 자체 신용으로 대출했다. 빠르면 올연말, 늦어도 내년초에는 기업공개를 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미국 컴퓨터 업체인 NCR의 반도체 공급업체로 출발한 심비오스 로직은 대용량 정보처리 시스템의 입출력장치(SCSI), ASIC 등 비메모리 반도체부문이 전체 매출의 75·, 데이터저장장치이 25·를 차지하고 있다. 80년대초에는 컴퓨터 입출력장치의 기본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며, 현재 세계 입출력장치 칩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급락한 것과 상관없이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기술력이 뒷바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전자는 심비오스의 독립경영을 보장하면서도 매달 10여명의 인력을 파견, 비메모리분야에 관한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또 모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대량생산기술을 심비오스에 접목시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메모리와 비메모리에 걸친 반도체 그룹으로의 성장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짐 패터슨 심비오스 로직 사장/“사외이사제 도입 경영조언 큰힘… 올 매출 7억불 달성 무난할 듯” 『공장에 신설비를 도입할때 자체 신용으로 자금을 빌렸습니다. 현금 보유도 동종경쟁업체보다 많고, 금융에 관한한 (현대전자의 도움이 없이) 홀로 설수 있게 됐습니다.』 심비오스 로직의 짐 패터슨 사장은 현대전자의 계열사임에도 불구, 현대그룹의 보증없이 자체 신용으로 미국 금융가에서 돈을 빌수 있는 능력을 키운데 대해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현지인 사장이 느끼는 기업운영방식을 현대가 대부분 인정해줬고, 현대그룹의 경영진들이 약속을 잘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출을 늘리는 것보다 이익을 확대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여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인수후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은행 신용을 회복했습니다.』 그는 『현대가 심비오스 로직을 인수했지만, 자율경영체제를 가진 회사』라며, 『현대전자와 상호 동반관계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비오스 로직은 사외이사 2명을 선임, 외부인사가 균형감각을 가지고 회사 경영에 조언할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읍니다. 지리·문화·언어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현대의 경영층과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패터슨 사장은 『현대그룹과 관계하면서부터 비즈니스가 전보다 두어배 강해졌고, 기업체질도 단단해 졌다』면서 자신도 현대그룹의 스타일처럼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기업인 현대전자와의 관계에 대해 『제품을 서로 팔고 사는 관계 이외에도 반도체 공정기술등 고부가가치 기술을 공동개발,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대전자와의 대금결제에서는 서로 에누리가 없다. 제3자에게 거래할때와 동일한 조건으로 가격, 서비스, 질을 보장함으로써 모기업과 현지기업이 대등한 입장에 서서 서로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패터슨씨는 올해 회사의 매출을 20% 이상 올려 7억 달러대에 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데이타 저장장치 시장의 성장 전망이 좋기 때문에 이 분야에 집중 투자할 생각이다. 패터슨 사장의 올해 또다른 목표는 미국 증권시장에 회사를 상장하는 것이다. 당장은 큰 자금수요가 없지만, 올 하반기부터 증시 상황을 점검, 빠르면 오는 10월, 늦어도 내년 3월까지는 기업을 공개할 작정이다.<포트콜린스(미)=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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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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