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 고니역의 조승우(오른쪽) 정마담역의 김혜수(왼쪽) 등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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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도박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말한다. 때문에 속고 속이고 때론 인생을 건 큰 승부를 해야 하는 그 세계는 그야말로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된다. 영화계가 이 좋은 소재를 놓칠 리 없다. 홍콩에선 ‘지존무상’의 유덕화가 인생을 건 승부를 했다. 할리우드에서도 수많은 도박사들이 손에 땀을 쥐는 승부를 펼쳤다. 허영만의 동명 인기만화를 영화화한 ‘타짜’에도 이들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도박세계만의 흥분이 가득하다. 하지만 ‘타짜’는 여기서 조금 더 나간다. 원작자 허영만과 각색자이자 감독인 최동훈은 ‘타짜’를 통해 허망한 인간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26세의 청년 김곤(조승우). 주변에서 ‘고니’라 불리는 이 청년은 땀 흘려 번 돈을 한푼 두푼 차곡차곡 모으며 사는 데에 기쁨을 느끼던 건실한 청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고니는 한 순간의 충동으로 사기도박꾼인 ‘타짜’들이 벌려놓은 도박판에 끼어 들고, 그곳에서 3년 동안 모아둔 전재산을 날리고 만다. 도박판에서 돈을 잃은 사람의 이성은 완전히 마비된다. 그건 고니도 마찬가지. 본전찾기에만 혈안이 된 고니는 마침 이혼을 당하고 위자료를 싸들고 친정에 내려온 누나의 돈까지 슬쩍해 도박판에서 탕진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미래와 가족의 미래까지 날려버린 고니는 잃어버린 돈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사기도박꾼 ‘타짜’의 길로 들어선다. 그때부터 평경장(백윤식), 정마담(김혜수), 고광렬(유해진) 등이 얽히고 ?鰕?한판 드라마가 시작된다.
‘지존무상’이 보여줬던 도박의 세계는 남자들의 인생을 건 ‘승부’가 강조된 세계였다. 온갖 술수가 난무하긴 하지만 결국 승리하는 것은 더 정정당당하고 강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지존무상’의 공간은 비록 도박판이지만 의리가 존재할 수 있는 세계이기도 했다. 하지만 ‘타짜’의 세상은 다르다. 제목부터 ‘사기도박을 하는 기술자’를 뜻하는 것처럼 ‘타짜’의 세계에서 강조하는 것은 ‘속고 속임’이다. 이곳에선 속이는 자가 승리하고 속는 자는 패배한다. 때문에 ‘타짜’라는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좀더 실제 세상과 닮았다. 동료라 믿었던 사람에게도 처절히 배신당하고 속고 속이는 타짜의 도박판은 우리네 인생과도 별로 다르지 않다.
감독은 이렇게 술수가 난무하고 번들거리는 욕망이 넘쳐 나는 세상을 마치 몰래카메라 찍듯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오랜 기간 실제 도박꾼들을 인터뷰하고 도박판을 취재해서 만들어낸 대사들은 생동감 넘친다. 전작 ‘범죄의 재구성’에서 사기꾼들의 세계를 마치 실제처럼 화면에 담아낸 바 있었던 최동훈 감독의 실력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이야기 구성도 탄탄하다. 20여권에 달하는 원작만화의 1,2부를 압축한 영화의 각본은 원작과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절묘한 거리를 유지한다. 특히 영화는 60년대였던 원작의 무대를 90년대로 옮겼는데 이는 IMF라는 절망적인 시대상황과 맞물려 등장 인물들의 욕망에 더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영화에 한몫 한다. 고니를 연기한 조승우는 부드럽게만 보이는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한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백윤식, 유해진과 악역 ‘아귀’를 연기한 김윤석 등의 배우도 기존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또 주목해봐야 할 것은 김혜수의 변신이다. 김혜수는 욕망과 소유욕이 넘치는 쉽지않은 캐릭터인 정마담을 연기했는데 극중 순진녀와 요염녀를 오가는 그녀의 모습이 영화에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