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돌아온 '플라자 협정'의 망령

지난 85년 9월22일 당시 제임스 베이커 미국 재무장관은 일본ㆍ영국ㆍ프랑스ㆍ독일의 재무장관을 뉴욕 맨해튼의 플라자 호텔로 불렀다. 극비리에 진행된 선진 5개국(G5) 회의에서 엄청난 뉴스가 터져 나왔다. 미국 달러를 절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당시 미국 경제는 재정 적자와 무역적자의 이른바 쌍둥이 적자에 시달렸고, 일본과 독일은 초유의 호황을 구가하며 미국을 조롱했다. 그날 회의에서 베이커 장관은 달러 절하방침을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다른 4개국 재무장관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후 1달러당 240엔이었던 환율은 95년에 80엔까지 떨어졌다. 그로부터 20여년 후인 지금, 제2 플라자협정의 망령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2002년에 시작된 달러화 하락은 앞으로 더 지속될 전망이다. 플라자협정 후 달러화가 10년째 급강하한 점에 비춰 지금의 달러 하강은 상대적으로 견뎌낼 만하지만 유럽이나 신흥경제국에서는 벌써부터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면 달러화 하락의 실체는 무엇인가.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최근 “달러 패권시대가 지나갔다”고 말했고, 일부 학자들은 달러화의 세계경제 주도권 상실을 거론한다. 하지만 달러화 절하는 미국이 교역상대국의 부를 뺏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헤지펀드의 대부격인 퀀텀 펀드의 조지 소로스 회장이 “달러 절하는 인접국을 궁핍화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듯이 미국이 다른 나라의 부를 빼앗아 경제를 살리려는 전략이다. 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과 독일 경제는 꺾였고, 미국은 세계 경제의 리더로 우뚝 솟아났다. 일본 도요타와 유럽 다임러에 밀리던 디트로이트의 자동차회사들은 경쟁력을 회복했다. 지금의 달러절하도 미국 교역대상국의 국부를 빼앗아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럼 5년째 달러 약세기조가 지속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자. 우선 글로벌 자금이 급격하게 이머징마켓으로 이동하면서 자산거품의 조짐이 일고 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은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에도 불구하고 급상승하고, 인도ㆍ베트남ㆍ브라질은 물론 빈국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방글라데시에 이르기까지 유동성 과잉 상태에 이르렀다. 마치 80년대 말 일본을 보는 것 같다. 플라자협정 후 엔화 강세는 일본의 거품을 가속화시켜 닛케이 지수는 89년 말에 4만 포인트까지 올랐고 도쿄 땅값이 미국 전체 땅값보다 비싸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병은 속으로 깊어갔고 90년대 들어 거품 붕괴로 10년 장기불황에 빠졌다. 지금도 이머징마켓은 주가가 오르고 부동산 값이 뛰니 좋을지 몰라도 80년 말의 일본과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아직은 미국 경제가 달러 약세 덕분에 힘을 얻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은 앞으로 몇 년 더 달러 가치를 떨어뜨릴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유럽은 미국에 더 부를 뺏기게 되고 단일 경제권에서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 경제는 플라자 협정 이후 나타난 이른바 ‘3저 호황’의 덕을 보았다. 달러약세ㆍ저금리ㆍ저유가를 골자로 한 3저 현상으로 80년대 말 우리 경제는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80년대에는 원화를 달러에 사실상 고정시켰기 때문에 엔화 강세의 덕을 봤지만 지금 원화는 엔화보다 더 빠른 강세기조를 보여 수출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게다가 유가는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서고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국제자금 조달 코스트가 올라 플라자 협정 이후 3저 호황의 혜택이 조금도 부여되지 않은 상황이다. 오는 19일 워싱턴에서 국제통화기금(IMF)와 선진7개국(G7) 회의가 열린다. 유럽국가들은 달러화 약세 저지를 위해 미국에 목청을 돋울 작정이고 중국도 위안화절상 압력에 강경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우리도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만큼 큰 소리로 미국의 달러 약세 정책에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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