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버지는 철근공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집의 ‘뼈’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아버지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이른 새벽 보통 일을 나가시는 까닭에 함께 있는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이죠. 땀이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해가 떠오르기 전 몸을 부리는 게 더 익숙한가 봅니다.
설사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 볼 일이 있더라고 그리 많은 말을 나누진 않습니다. 철 덜든 딸과 아버지의 사이가 으레 그렇듯 말이죠.
그런 아버지께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를 낳기 전 아버지가 살아냈던 27년,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함께 보낸 27년의 이야기가 갑자기 궁금했습니다. 그날 아버지와 전 네 시간이 넘는 통화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1980년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시작됐습니다. 80년 5월 18일의 그 광주 말입니다.
IMF 시절의 공사장 잡부로 시작해 어느덧 13년차 철근공이 된 아버지는 말씀하십니다.
“일하다가 가끔 지붕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어. 시원하고 위험하지 않은 곳 말이야.”
철근공 아버지가 전하는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아래의 영상에 담았습니다.
철 덜든 딸이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채 내 나이 스물일곱을 뒷바라지 해온 아버지, 당신은 나의 대한민국입니다.
[추석 기획]가족, 당신은 나의 대한민국입니다.
[예고편(클릭)]<1> 전업주부, 엄마의 이야기(클릭)
/양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