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량이 예상 보다 적을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7일 배럴당 34달러선을 돌파했던 서부텍사스 중질유(WTI) 4월 인도분 가격이 8일 증산에 대한 기대감으로 31달러선으로 밀리는 급락세로 돌아섰다. 이날 유가는 1년여만에 가장 큰 폭인 2.87달러(8.4%)가 떨어졌고 뉴욕 상품거래소가 폐장한 이후 추가로 배럴당 40센트가 하락했다고 딜러들이 밝혔다.이날 유가 하락은 그동안 증산에 반대해 오던 이란이 사우디와 함께 유가안정을 위해 원유를 적정수준으로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합의하면서 시장분위기가 급반전됐기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내에서 「매파」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이란은 그동안 증산에 온건한 입장을 보여온 사우디와 증산문제를 놓고 입장차를 보여왔다. 이란은 알제리, 리비아 등과 함께 계절적인 요인으로 2·4분기에는 원유 수요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증산문제는 올 하반기에나 논의할 문제라고 주장해 왔다.
이란과 사우디 양국 석유장관은 이날 리야드에서 회담을 갖고 『최근의 유가상승이 장기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세계경제와 원유시장안정을 위해 유가가 적정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원유를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날 공동성명은 이란이 그동안의 태도를 바꿔 증산에 동의할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란이 그동안의 고집을 꺾고 증산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세계 최대의 석유수입국인 미국이 OPEC국가들에 대한 압박이 주요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7일 고유가가 유지될 경우 강력 대처하겠다는 경고성 발언을 한데 이어 8일에는 미 상원 외교관계 위원회가 클린턴대통령에게 OPEC에 원유 생산을 즉각 늘리도록 압력을 가하도록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와함께 최근 유가 상승에 편승, 지난해 산유국간에 합의한 감산이행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등 OPEC내에서 그동안의 합의사항에 대한 누수현상도 점차 커지고 있다. OPEC 회원국들의 감산합의 이행률은 지난 1월 74%에서 2월에는 72.6%로 하락하는 등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가들은 회원국들이 고유가에 편성, 생산량을 점차 늘리고 있다며 고유가가 지속되는 한 감산합의 이행률은 계속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날 이란의 갑작스런 입장 전환으로 촉발된 유가 급락이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우디와 이란이 이날 구체적인 증산규모나 증산시기 등에 대해 여전히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OPEC내 「매파」에 속하는 리비아와 알제리, 이라크 등 일부 산유국이 2·4분기중 석유수요가 하루 300만배럴 이상 감소할 것이라며 증산 압력에 계속 반발하고 있다. 아메르 라시드 이라크 석유장관은 이날 관영신문 알 줌후리야와의 회견을 통해 『증산에 절대 반대한다』고 강조한 뒤 『지금은 증산을 논의할 적기가 아니며 여름이 끝날 때까지 논의를 연기해야한다』고 말했다.
특히 OPEC이 오는 27일 예정된 비엔나 회의에서 하루 증산량을 100만~120만배럴 정도로 결정할 경우 유가 상승세를 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계절적인 수요량 감소를 고려하더라도 최소한 하루 200만달러 이상 증산해야 유가 상승세가 진정될 것으로 시장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일단 배럴당 30달러가 심리적인 지지선이 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이형주기자LHJ303@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