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월가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금융기업의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어렵다"는 푸념을 자주 듣게 된다. 일부 증권사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임원급이던 뉴욕지점장을 차장급 실무자로 낮췄다. 맨해튼의 중심 미드타운에 자리 잡고 있던 금융기업들은 임대료가 싼 외곽 지역으로 사무실을 옮기고 있다.
흔히 세계의 수도로 일컬어지는 뉴욕에서 한국의 위상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한해 1,00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타임스퀘어의 화려한 전광판 광고에서 한국 기업들은 당당히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을 보기 위해 존에프케네디 공항에 10대 미국 청소년들이 몰려드는 것이 당연시될 정도로 한국의 대중문화도 빠르게 뉴욕 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 진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금융산업만은 예외가 되고 있다. 한 발 앞서가 있는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무서운 기세로 추격해온 중국의 금융기업들에도 뒤쳐지기 시작했다.
은행을 비롯한 국내 금융기업들이 앞다퉈 해외진출에 나서고 있지만 뉴욕의 현실에 비춰 본다면 그 성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곳 한국 은행들은 교포와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라는 한정된 파이를 놓고 제 살 깎기식 영업을 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한국 주식 중개에만 목매달고 있는 실정이다. 10년 전의 영업형태에 비해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흔히 한국 금융의 글로벌화가 제대로 되지 못한 이유로 전문인력의 부족, 네트워크의 부재, 자본의 한계 등을 꼽는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표면에 드러나는 요인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금융기업들이 10년, 20년 앞을 내다보고 글로벌화를 추진할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문화와 법률, 제도가 상이한 외국에서 규제산업인 금융업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며 장기간에 걸친 투자와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더욱이 세계 자본시장의 중심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들과 직접 경쟁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기반을 넓히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다. 지금과 같은 소극적인 행태로는 당연시되는 몫조차 지키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 진출해 있는 한국 대기업들의 주거래 은행들이 외국계로 속속 넘어가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