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업계에 큰 골칫거리가 있다. 간판만 달고 입찰에 참가해 낙찰을 받게 되면 수수료를 떼고 공사 전체를 타 시공업체에 넘기는 껍데기 브로커의 존재이다. 서울시가 이러한 폐해를 근절하기 위해 300억원 이상 공사에 적용하고 있는 최저가낙찰제를 모든 공사에 확대 적용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 차원에서도 내년부터는 100억원 이상 공사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는 300억원 미만의 공공공사에서 적격심사낙찰제도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적격심사를 통과한 업체들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가격경쟁을 하게 되는데 대체로 가격하한선에서 운 좋은 업체가 낙찰받게 된다. 이에 일부 업체들은 낙찰 확률을 높이기 위해 다수의 페이퍼 컴퍼니를 차리고 정작 수주된 공사는 일괄 하도급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저가투찰을 막고 중소 건설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입찰 질서를 흐리고 건전한 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서울시의 취지는 이해되지만 과연 최저가낙찰제의 도입이 페이퍼 컴퍼니의 난립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인지에는 의문이 있다. 또한 저가낙찰로 인한 더 낮은 가격으로의 하도급과 현장인력의 근무 환경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예상된다. 각종 부동산대책의 영향으로 빈사 상태에 있는 중소 건설 업계를 상대로 새로운 제도를 실험하기에는 대가가 너무 클 것도 염려된다. 적격심사제도의 취지를 살리면서 입찰 브로커의 활동을 막을 수 있는 창의적인 해법이 모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사의 입찰을 통해 공공이 얻을 수 있는 편익은 가격ㆍ품질ㆍ공기의 형태로 나타난다. 공기는 주어진다고 보면 입찰 방법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은 가격과 품질이다. 최저가낙찰제는 가격경쟁을 통해 공사 비용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 점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최저가낙찰제하에서도 브로커식 영업은 근절할 수 없다. 투찰 기회가 많을수록 낙찰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환부를 도려내기 위한 서울시의 처방에 오류가 있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최저가낙찰제의 한계를 지적하고 싶다. 최저가낙찰제를 선호하는 입장에서는 품질은 엄격한 감리감독과 사후 처벌을 통해 확보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낙찰 가격이 내려가면 그 부담이 하도급업체와 기능인력에 전가돼 어떠한 감리감독에도 불구하고 저급한 시공은 불가피하다. 정도가 심한 경우의 부실 시공은 처벌을 한다지만 공공시설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사후약방문식의 대처는 곤란하다. 이러한 이유로 하도업체와 기능인력, 심지어는 수요 부처까지 최저가낙찰제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품질 확보를 전제로 시설물의 시공 비용만이 아닌 유지관리 비용까지 포괄하는 총비용을 낮출 수 있는 최고가치낙찰제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문제의 발단이 된 부실 무자격 업체 퇴출을 위해서는 이미 건설교통부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몇 가지 대책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우선 자본금, 시설ㆍ장비, 기술자 보유 현황 등 건설업 등록 기준 충족 여부에 대한 실태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 담당 공무원의 인력 부족으로 효과적인 실태조사가 어렵다면 건설협회 등 유관단체와 연계해 등록 기준 점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건설업 등록시 법정자본금의 일정 비율을 금융기관에 예치하고 법정자본금까지 보증이 가능하다는 확인서를 발급받는 보증가능금액확인서제도를 강화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또한 공공공사 낙찰예정자에 대해서는 발주자가 등록 기준 충족 여부를 정밀 실사해 미달시에는 낙찰을 취소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많은 정책이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목적에 적절하지 못한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다른 부작용을 야기하며 더 큰 폐해를 가져오는 사례를 우리는 종종 목격했다. 부실 업체를 통한 일괄 하도급을 막기 위해 최저가낙찰제를 확대하겠다는 서울시의 대응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최저가낙찰제의 확대 도입 여부는 저가투찰의 방지책, 시공 과정에서의 품질 확보 방안, 공사비와 유지보수 비용을 포함한 시설물의 총생애주기 비용의 최소화 방안 등과 함께 고민해 결정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