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표로 흥한 자, 표로 망한다

정치권력의 성패는 결국 표의 향방이 결정짓는다. 아름다운 패배라고 억지위안은 삼지만 냉혹한 정치의 세계에서 선거 패배 뒤 남는 것은 '막대한 빚과 무력감'이라고 정치인들은 말하고는 한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선거는 이기고 봐야 한다'는 승리 지상주의가 깔려있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선거 때는 으레 엄청난 공약들이 쏟아진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가깝게는 일본 집권세력도 공약 덕에 선거는 승리했지만 뒷감당을 하지 못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고속도로 무료화'와 '자녀수당지급' 등으로 대표되는 공약은 엄청난 재정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무상공약이었다. 급기야'무상공약'의 수정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총리 퇴진압박과 반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오키나와에 있는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민주당의 또 다른 총리는 공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되자 직을 내놓기도 했다. 표만을 좇아 '표로 흥한 자, 표로 망한 셈'이다. 시선을 우리나라로 돌려보면 언어만 다를 뿐 일본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는 듯하다. 지난해 상반기에 정치권과 충청도 등 지방을 뜨겁게 달궜던 세종시 논란도 선거과정의 약속을 파기하면서부터 촉발됐다. 최근에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와 동남권 신공항이 나라 전체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비록 경제적 이유 등을 공약파기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표를 위한 공약(空約)이었다는 점에서 해당 지역은 분노로 들끓고 있다. "표를 주고 나니 효용성이 떨어져 다른 표를 얻기 위해 약속을 깼다"는 것이다. 정치의 신뢰가 하나하나 무너지고 있는 순간이다. 서울ㆍ경기를 휩쓸었던 뉴타운 공약은 또 어떠한가. 지난 총선에서 너도나도 뉴타운 공약을 들고 나와 국회의원 배지는 달았지만 이제는 그것을 지킬 엄두가 나지 않아 되려 전전긍긍하는 모습들이다. 정치학자들은 흔히 정치를 '사회를 혁신시키는 최고의 도구'라고 한다. 제대로 된 정치는 국민은 물론 사회와 국가를 발전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다. 오직 표만을 좇는 현실정치의 질곡을 벗어나 책에서나 봤음 직한 그러한 '이상(理想)국가'의 웅지를 품은 정치인을 기대하는 게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소리로 치부돼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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