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서울시 민자사업 갑을관계 뒤바뀌나

금융컨소시엄 지하철 9호선 새 대주주로<br>최소수익보장·요금결정권 등 투자자에 특혜 주던 관행 깨<br>실질적 운영 주도권 행사

서울시가 그동안 갈등을 빚어오던 지하철 9호선의 대주주를 내보내고 새로운 사업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함에 따라 서울시의 다른 민자사업 갑을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는 도로나 다리 등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등에 투자하는 민자사업의 경우 투자기간이 길고 회수위험이 높아 투자자에게 최소수입보장(MRG)을 해주거나 고수익률을 제시해온 게 관행이었다. 정부 재정이나 지자체 재정만으로 대규모 비용이 들어가는 SOC 사업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다 보니 고수익 보장 등 특혜를 용인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실제로 서울 지하철 9호선의 경우 MRG조항 때문에 서울시가 맥쿼리 등에 재정으로 보조해 준 자금은 연간 400억원이 넘는다.

이 때문에 대규모 민자사업에서는 두둑한 자금을 가진 투자자는 늘 '갑'이었고, 재정적인 여력이 없는 정부나 지자체는 '을'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기존 9호선의 대주주를 교체하고, 새로운 투자자를 받아들이면서 내건 조건을 들어 보면 앞으로 경전철 등 다른 민자사업의 갑을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7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맥쿼리를 대신할 9호선 신규투자자에게 MRG 폐지, 사업수익률 5% 미만으로 현실화, 시의 운영주도권 인정 등을 내걸었다. 신규투자자로 나선 보험사와 은행들은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자 9호선 사업에서 투자자에게 MRG를 통해 연 8.9%의 수익률을 보장하고, 요금인상 등도 주주(투자자)들에 일임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조건이다.

특히 시의 요금결정권 인정 등은 민자사업이라도 투자자는 투자만 하고 운영 등은 관여시키지 않겠다는 것으로 풀이돼 투자자의 요금인상 여지 등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분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까지 민자사업은 투자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계약이 체결돼왔지만 이제부터는 금융시장의 변화는 물론 시 재정이나 시민부담 등을 감안해 적절한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신규투자자와 MRG 조항을 없애고, 명목수익률도 5% 미만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시의 추가적인 재정부담이나 요금인상 요인도 없어져 시민들의 부담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가 9호선 기존 주주들에 비해 새로운 투자자들에게 파격적으로 낮은 수익률을 제시했음에도 투자유치에 성공한 것은 저금리 등 변화된 금융시장 여건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심각한 재정부족과 인프라 투자 노하우가 전혀 없을 때보다 여건이 훨씬 좋아졌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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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보험사의 경우 운용자산이익률도 5%미만으로 신통치 않기 때문에 민자사업에 자금을 댈려고 하는 사업자는 많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과거와 달리 민자사업 발주처의 입김이 다소 세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나아가 민자사업이라도 실질적인 운영 주도권을 갖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투자자들은 펀드를 통해 간접투자하고 요금결정 등 경영에는 일절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요금결정권도 갖고 시가 이사회에 이사 1명을 파견할 수 있도록 명문화하겠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시 관계자는 "시가 추천한 이사를 1명 포함함으로써 각종 논의가 있을 때마다 공공성을 확보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9호선의 경우 서울시가 기존 주주들에게 터무니 없는 고수익을 보장해주던 구조를 바꿔 시민들의 이익으로 되돌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계약 중간에 MRG 폐지와 요금결정권 회수 등으로 수익성을 악화시켜 외국자본이 스스로 철수하게 한 것은 또 다른 논란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계 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맥쿼리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SOC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곳인데 9호선 민자사업처럼 도중에 철수한 예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형식적으로는 서울시에 백기투항해 내쫓기듯 철수한 것은 시나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프라 투자의 경우 투입자금 규모가 대규모인데다 이익회수 기간이 20~30년 이상으로 길기 때문에 이 같은 투자자의 현실을 감안해주지 않으면 맥쿼리와 같은 외국계 투자자들이 먼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편 맥쿼리는 논란이 됐던 서울 도시철도 9호선을 포함해 부산항 신항2-3단계, 인천대교, 서울~춘천고속도로, 용인~서울고속도로, 마창대교, 우면산터널 등 2000년 이후 10개 이상의 도로망 등에 투자하고 있다.

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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