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하와이에서 철수하고 있다.지난 80년대 후반, 일본인 부동산 투자자들은 세계적인 관광지 하와이의 부동산을 집중 매입, 「식민지」건설의 꿈을 성사시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후 10여년만에 이들은 다시 쓰라린 패배를 맛보면서 일본 본토로 퇴주하고 있다. 그것도 당초 매입가보다 심지어 절반도 안되는 돈을 겨우 손에 쥔 채 혼비백산하고 있는 것이다.
하와이의 리조트나 쇼핑 시설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던 일본인들이 이처럼 황급히 퇴각하는 것은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전후 최악의 일본경제 침체가 근본 배경이다. 은행 돈으로 해외부동산 매입하는데 재미를 들였던 일본기업들은 이제 생존을 위해 서둘러 매각에 나서고 은행들도 이들 기업에 대출한 돈을 되돌려 받기 위해 안달하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 하와이에서 주인이 바뀐 부동산의 면면을 보면 그 실상은 쉽게 짐작된다. 와이키키 해변에 인접, 이 지역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유통업체인 알라 모아나 쇼핑센터, 호화롭기로 이름난 마우이 지역의 그랜드 웨일리아 리조트 앤 스파가 대표적이다. 또 코나 스프 리조티, 카아나팔리지역에 있는 웨스틴 마우니 호텔, 우아후지역의 북쪽 해변에 있는 터틀베이 힐튼 골프 앤 테니스 리조트 등도 일본인 주인들이 짐을 싸야 했다.
물론 이같은 일본인들의 부동산 매각은 하와이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미국내 대형 부동산으로 손꼽히는 물건 중 뉴욕의 엑세스 하우스, 샌프란시스코의 ANA 호텔, 캘리포니아 카멜 인근에 있는 상류층 전용의 페블 비치 골프 클럽 등도 지난해 아시아계 대신 구미 출신 부호들이 새 주인으로 들어앉았다. 황망히 떠나는 탓에 부동산 매각 대금이 본전에 못 미치는 일은 다반사다. 예를 들어 지난해 스타우드 호텔 앤 리조트에 매각된 웨스틴 마우이 호텔의 매각 대금은 1억3,200만달러. 지난 90년 일본 카우카니사의 매수대금 2억9,000만달러에 비하면 절반도 안되는 돈이다. 같은 해 세키구치 타케시 라는 일본인이 6억달러를 들여 세계 최고급 리조트로 건설했던 그랜트 웨일리아 호텔 역시 지난해 KSL레크레이션사에 2억7,500만~3억1,000만달러에 팔렸다.
하와이에 있는 텍스 파운데이션사의 로웰 칼라파는 『일본인들이 당시 너무 비싸게 사들였기 때문에 본전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헐값에라도 팔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해외부동산이 쓸모없는 짐이 됐기 때문이다. 일본 최대 슈퍼마켓 업체인 다이에이가 알라 모아나 쇼핑센터를 팔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이에이는 매각대금으로 1억달러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제너럴 그로스 프로프리티즈사는 8억1,000만달러만 지불했다.
일본인들이 하와이 등 미국지역의 부동산을 앞다투어 내놓는 것은 그나마 9년째 경기호황인 미국기업들의 매수여력이 살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퇴각하기 쉬울 때 퇴각하자는 현실적인 판단이다.
이같은 일본인의 패주를 보는 하와이 주민들은 『차라리 잘됐다』는 표정이다. 프루덴셜 로케이션사의 마이클 스클라즈 연구소장은 『관광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일본계 은행 보다는 호텔 운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주인이 되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라고 평한다. 새 주인들이 관광 시설을 고객들의 요구에 맞게 새롭게 단장하면 하와이를 찾는 관광객들이 자연 늘지 않겠느냐고 기대하고 있다. /문주용 기자 JYMO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