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장

"국가사무 40% 2018년까지 지방정부로 단계적 이양"

지방자치 부활 20년… 자체 세원 발굴토록 법 정비 필요

재정 건전성 강화 위한 '긴급재정관리제' 서둘러 도입을

지방 '자율·창의'- 중앙 '조정·지원' 역할 분담 정착해야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됐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국가사무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총 4만6,000여건에 달하는 국가사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국가 존립에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과감하게 지방으로 이양해나갈 생각입니다."

심대평(73·사진)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지자체들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1995년 민선 자치단체장 1기 선거를 실시한 후 우리나라에 지방자치제가 다시 도입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지방자치제도는 그동안 성과도 많았지만 문제점도 많이 노출시켰다.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자치단체장이나 지역 의원을 뽑는 등 겉으로는 자치를 하는 것 같지만 지방재정의 중앙정부 의존도가 80%에 달해 '2할 자치'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심 위원장은 이 같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한계를 '준비되지 않은 제도 부활'의 결과물로 풀이했다. 심 위원장은 "1991년 지방의회 부활과 1995년 민선 1기 출범 등으로 지역주민이 행정의 주체로 인식된 점은 상당한 성과지만 자치입법권과 자주재정권·조직권이 없었고 선거 때마다 기본이 흔들리는 제도의 변화로 지자체가 성숙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중앙정부의 인식 문제로 지방을 불신하고 지자체를 행정주체가 아닌 하부기관으로 인식한 점도 자치발전을 더디게 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지자제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리고 위원장에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 그리고 정치 영역에서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여 '행정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심 위원장이 선임됐다.

이후 위원회는 지방자치제도의 2단계 발전을 위해 현정부 임기 내에 추진할 20대 과제와 8대 핵심과제를 마련하고 실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치사무와 국가사무의 정비, 권한과 사무 이양, 교육자치와 지방자치의 연계, 자치경찰제 도입 등이 포함돼 있다.

심 위원장은 특히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자치사무의 비율을 대폭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국가사무와 지방사무 비율은 8대2에 달할 정도로 선진국에 비해 자치사무의 비율이 지나치게 낮다"며 "현재 20%에 그치는 지방사무의 비율이 오는 2018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수준인 40%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1차적으로 728개 국가사무의 지방이양을 위한 법률개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사무의 이양을 개별부처에서 추진할 경우 지나치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심 위원장은 "이들 사무를 이양하는 데 고쳐야 할 법률이 124개에 달해 20개 정부부처, 16개 국회 상임위원회와 관련돼 있다"며 "이를 개별부처에서 이양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물론 이양할 때마다 소요인력과 재정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심 위원장은 국가사무를 지방으로 이양할 때 개별부처를 통한 법률개정 작업 대신 지방일괄이양법을 제정해 한꺼번에 이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보다 한발 먼저 지자체 정비에 나선 일본도 1999년 지방일괄이양법을 제정해 2000년부터 지방으로의 사무 이양을 본격화했다.

심 위원장은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일괄이양법이 연내에 통과되면 당장 내년부터 본격적인 국가사무의 지방 이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지자체 역량 강화에 필수적인 것은 뭐니뭐니해도 '돈'이다. 사무와 권한만 주고 재원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의 재원마련은 지자체 개편의 중요한 문제다. 지방재정 자립도는 지자체를 시작한 1991년 66%에 달했으나 지난해 51%까지 떨어졌고 올해는 45%로 추락하는 등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심 위원장은 "지방의 재원확대는 지방교부세 상향과 지자체의 자체적인 세수확대 등 투트랙이 필요하다"며 "우선 지방소비세율을 현재 11%에서 앞으로 20%로 높이고 교부율도 19.2%에서 21%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지방법인세·공동세·지방소비세 도입과 지역자원시설세 등 과세 대상 확대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심 위원장은 "지자체는 각각의 특색을 살려 창의적 사업을 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자체 세원 발굴이 필수적"이라며 "하지만 현재는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지자체 조례로서 새로운 세원을 발굴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앞으로 이와 관련한 법률개정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지자체 스스로 재원을 강화한다면 그동안 문제가 돼 왔던 선심성 또는 낭비성 행정도 많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심 위원장은 "지금은 지자체들이 중앙정부로부터 돈을 얼마나 '따내느냐'에만 신경을 쓰고 있어 실질적으로 '내가 번 돈'이라는 인식이 약하다"며 "앞으로 지자체들이 자체적인 세원 마련에 적극 나선다면 내가 힘들게 벌어들인 만큼 지출 또한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 위원장은 지자체의 권한과 재원 이양에 따른 책임성과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지자체파산제도 도입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지자체파산제는 개인회생제도처럼 지자체를 살리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 일종의 재정위기관리 시스템"이라며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제재적 성격의 파산제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파산'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줄이기 위해 긴급재정관리제도로 용어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 혁신방안은 행정구역 개편과도 맞닿아 있다. 이에 대해 심 위원장은 지방행정은 생활권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그는 "현재 행정권역은 과거 지방자치제 이전 시절에 편의상 나눠놓은 것인데 자치단체는 동일 생활권을 동일 행정권역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따라서 광역시나 특별시의 경우 구 단위의 자치단체 개편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경우를 보더라도 생활권은 시 단위로 같지만 구별로 행정 서비스의 격차가 지나치게 커진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현재 지방행정체제 개편과 관련해서는 특별시나 광역시의 경우 구청장은 직선으로 하더라도 구 의회는 구성하지 않는 방향으로 한 방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교육자치 개편도 위원회가 고민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다. 최근 들어 교육감 직선제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각 교육청의 경우 시도전입금이 8조원에 달해 전체 예산의 17%을 차지할 정도로 시도지사의 교육재정 부담은 크다.

심 위원장은 "지금은 교육자치와 지방자치가 분리돼 있어 중복사무·정책갈등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개선안과 교육계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통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재 위원회는 교육과 지방자치의 급속한 통합보다 '선 연계 후 통합' 원칙 아래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인사교류 활성화와 재정통합 수립 등의 과정을 거쳐 이후에 임명제나 러닝메이트제 또는 교육청을 지자체 보조기관으로 설치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

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첫 회의를 열어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심 위원장은 17개 시도를 돌아다니며 자치현장 토크를 개최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20대 추진과제, 8대 핵심과제를 마련했다.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심 위원장은 "출범 후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소통과 활동을 통해 지방자치발전 과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며 "이를 바탕으로 6월에 과제별 개편안을 담은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방행정개편과 자치제도 개선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심 위원장이 맡게 된 것은 누구와도 견주기 힘든 풍부한 경력 때문이다. 충남도지사와 대전시장·의정부시장 등 광역자치단체장을 민관선 포함해 15년 넘게 두루 거쳤다. 이뿐 아니라 대통령실 행정수석비서관,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에 이어 국회의원과 자유선진당 대표 등도 역임해 행정과 정치 역량을 갖췄다.

이번 위원회의 활동이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이해와 요구, 국회 설득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이해관계가 얽힐 수밖에 없는 작업이라 심 위원장에게 임무가 돌아간 셈이다. 그가 바라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은 확고하다.


심 위원장은 "중앙정부는 조정과 지원, 지방은 자율과 창의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지자체들이 자율과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권한과 책임이 함께 주어져야 하고 이런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곳이 바로 선진국"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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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권욱기자











He is…

△1941년 충남 공주 △대전고, 서울대 경제학과 △행정고시 4회 △1980년 의정부시장 △1988년 충남도지사 △1990년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 △1992년 대통령실 행정수석비서관 △1995년 충남도지사(민선 3선) △2007년 17대 국회의원 △2011년 자유선진당 대표 △2008년 18대 국회의원(공주·연기) △2013년 세종미래비전연구원장 △2013년 지방자치발전위원장













지자체 권한·책임 강화하고 현장 지휘할 전문가 양성해야

■ 재난·재해 신속대응하려면

한영일기자

세월호 참사로 안전관리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재난사고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지자체 역할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심대평 위원장은 "재난이나 재해사고 대응원칙은 현장중심·문제중심·사람중심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세월호 사건에서는 이 모든 게 무시되면서 희생이 커졌다"며 "이번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지적으로 일어나는 각종 사고에 대응하려면 지자체에 확고한 권한과 책임을 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재정과 권한·기능을 지방에 배분해 확보된 자율성을 바탕으로 자치단체마다 각각의 위기관리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또 "유사시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위기관리 능력은 자치단체장이 반드시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이라며 "중앙정부는 각 자치단체의 위기관리 역량을 통합하고 지원하는 종합적인 시스템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관련 전문가 양성과 배치에 이어 현장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방에는 재난 및 재해 관련 전문가가 부족한 실정이어서 이와 관련한 인재양성이 필요하다"며 "특히 재난 위기관리는 현장성이 가장 중요한 만큼 지자체는 사고현장에서 신속히 관리하고 중앙은 지원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다녀온 심 위원장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고, 특히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한책임을 느낀다"며 "이번 사고에서 재난관리 시스템과 매뉴얼이 없었다기보다는 그 시스템과 매뉴얼을 운영하는 책임자의 안일한 의식이 더 큰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스템이 완벽해도 그것을 작동하는 사람의 의식이 따라주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며 "위기관리 시스템을 운영하는 책임자를 비롯한 모든 공직자의 국민안전에 대한 인식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대담=오철수 사회부장(부국장대우) cso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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