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경제 발목잡는 물가 불안

얼마 전 라면 값 인상을 앞두고 사재기가 빈번하다는 뉴스를 접한 한 동료가 “물품이 귀한 못사는 나라에서나 있음직한 일”이라며 신기하다고 했다. 오랫동안 물가가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최근 물가불안 특히 생필품 값 급등 현상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물론 태풍 피해로 추석 제수용 과일 값이 크게 오른 일은 때때로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소비자물가지수(CPI)가 5개월째 급등해 물가상승률이 4%에 근접한 것은 수년만의 일이다. 지금의 물가상승 진원지는 나라 밖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각종 광물에 이어 곡물가 등이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해 쓰는 우리나라도 물가상승이 불가피하다. 물가가 오르는 데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경기 활황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 물품이 귀해진 경우이다. 두 번째는 태풍에 따른 낙과로 과일 물량이 줄어드는 것처럼 공급이 부족한 경우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세계경제 전반을 볼 때 첫 번째 경우에 해당된다. 중국이나 인도 등 신흥 경제대국이 고속 성장하는 가운데 산업화에 필요한 각종 원자재의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국가의 신흥 중산층의 소비증대도 한몫하고 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라는 말이 경제에도 들어맞는 것 같다. 지난 5년여 간 국내 경제활동이 시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나름대로 성장한 것은 수출 호조세 덕이었다. 세계 경제 특히 우리의 이웃인 중국 경제가 좋으니 동네 가게 격인 한국 경제도 장사가 잘됐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신흥국 경제 호황이라는 좋은 일이 국제원자재 가격 앙등이라는 좋지 않은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제 곡물가가 오른다고 모든 물가가 줄줄이 오르지는 않는다. 90년대 중반 국제 곡물가가 요즘처럼 오른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기타 원자재 가격이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곡물 공급이 다시 늘면서 곡물가도 빠르게 안정세를 되찾았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원유ㆍ광물ㆍ곡물 가격 앙등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 매우 특징적이다. 외부요인에 의한 물가압력이기 때문에 우리 정책당국이 원천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 국내 물가가 더 치솟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물가압력이 지속되면 자칫 임금상승이라는 국내 물가 불안요인으로 불똥이 튈 수 있다. 유류세 인하는 적절한 대책인데 소비자들이 실제로 지불하는 가격이 인하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곡물가의 고공행진이 지속되면 기후조건이 맞고 유휴 토지가 넓은 나라와 장기 식량자원 개발과 확보를 위한 협력방안을 찾아보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또 국내 물가불안이 수입물가 앙등에 기인하기 때문에 원화환율의 절상이 물가안정 효과가 있음을 감안해 정책적 대응을 생각해볼 수 있다. 때마침 엔화와 위안화가 절상추세이기 때문에 원화 절상이 수출경쟁력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앞으로 물가 여건이 과거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은 그동안 엄청난 유휴인력에 힘입어 세계시장을 상대로 저가 공산품 공급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세계적인 물가안정에 기여한 바 크다. 이제 중국 내 물가 및 임금 상승, 위안화 절상 등이 진행되면서 이러한 여건이 크게 바뀔 수 있다. 물론 지속적으로 생산비를 낮추는 기술개발도 계속될 것이지만 중국 효과에 비해 크지 않다면 추세적 물가상승이 과거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욕적인 경제활성화 어젠다를 준비해온 새 정부가 물가 불안에 발목이 잡힌 듯해 안타깝다. 잘 대처해 향후 정책 신뢰도를 높이는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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