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크루그먼 교수] NYT 칼럼니스트 데뷔

크루그먼은 「다시 한번(ONCE AND AGAIN)」이란 제목의 이 칼럼에서 현재를 「제2의 세계경제시대」라고 지적하고, 20세기 초 정치적 기반이 약해 단번에 붕괴된 세계경제주의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일반인들의 정치적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 금세기의 경제적 과제라고 강조했다.칼럼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90년대는 무엇보다도 세계화의 10년이었다. 나쁜 소식(금융위기)과 희소식(생활수준의 지속적인 향상)이 모두 국가경제의 통합 강화 및 무역, 투자의 지속적인 증가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전에도 이런 시기가 있었다. 사학자들은 운송 및 통신분야의 신기술로 대규모 국제무역과 투자가 처음으로 가능하게 된 19세기 중반 이후를 「제1의 세계경제」로 부르곤 한다.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경제를 창출하기 위해 기술자들은 대서양에 케이블을 설치하고 알프스산맥에 터널을 뚫는가 하면 바다를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는 등의 기적을 일궈냈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가 완성될 즈음 세계경제는 분열로 빠져들었다. 제1의 세계경제는 어느 정도까지는 전쟁의 희생자라고도 할 수 있다. 파나마 운하 개통과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모두 1914년 8월에 이뤄졌다. 전쟁과 이로 인한 간접적 결과인 초인플레, 독일의 정치적 불안정, 미국의 고립주의 등은 1945년까지 세계경제를 철저하게 분열시킨 세계화 추진세력의 후퇴를 부분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비록 무역과 투자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지만 세계경제주의 주창자들은 이미 1914년 이전에 수세에 몰려있었다. 일부 엘리트들이 세계경제주의를 계속 주창했지만 세계경제의 정치적 기반이 안정적이지 못해 최초의 충격만으로도 체제가 붕괴되고 말았다. 우리는 현재 지난 반세기 동안 주로 미국의 지도력하에 재건된 「제2의 세계경제시대」에 살고있다. 한번 쓰러진 세계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데는 장시간이 소요됐다. 세계 전체의 생산대비 무역규모가 1914년 이전 수준에 도달한 것은 70년대 이후였으며 신흥시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재개된 것도 최근 10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제2의 세계경제는 튼튼한 기반위에 세워진 것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충분할 만큼 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경제적인 상거래관계와 정치적인 정복의 차이를 이전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 무역은 더 이상 자국 국기를 앞세고 행하지 않으며 노골적인 제국주의는 구식이 됐다. 서방국가들은 1914년 세계를 재앙으로 이끈 무력을 동원한 민족주의로부터 얼마간의 교훈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경제주의는 당시 처럼 극히 소수 의견에 불과하며, 일반인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뿌리없는 세계주의자들의 이념으로 치부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시위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친 것에서도 이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현실이 자유무역주의자 편에 서 있고 세계무역이 일반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해도 반(反)세계경제주의의 주장이 호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일반인들은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한 세계경제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이를 선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금세기의 더 큰 경제적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다. 즉 제2의 세계경제가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참가자들을 뛰어넘어 일반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실패한다면 제2의 세계경제도 결국 제1 세계경제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이형주기자LHJ30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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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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