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이 대형 민간은행의 손아귀에 들어갈 위기에 처하면서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공화당의 태업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늑장대처로 정부 몫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취임이 늦어지는 바람에 민간은행이 선출한 인사들이 다수파가 됐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 로스쿨의 피터 콘티브라운 연구원은 14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게재한 '연준에서의 헌법의 위기'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대형은행의 꼭두각시가 연준을 장악했다는 지적이 좌우파를 막론하고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론 폴 전 공화당 하원의원은 최근 "미국민의 돈과 신용이 지속적으로 (은행이라는) 특권계층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 1913년 설립된 연준은 우여곡절 끝에 193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현재의 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했다. 12명의 FOMC 투표위원을 정부가 지명하는 연준이사 7명, 민간은행이 선출하는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5명으로 구성해 중앙은행 통화정책을 민간이 견제하되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최근 '7 대5'라는 FOMC의 헌법적 유산이 무너지고 있다는 게 콘티브라운 연구원의 비판이다. 1980년 이전만 해도 FOMC 내 민간인사가 다수를 점한 시간은 단 16일에 불과했지만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는 지난 5년간 42%에 달했다.
더구나 정부 측 인사가 단 2명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FOMC에 남아 있는 정부 지명 인사는 재닛 옐런 연준 의장, 대니엘 타룰로 이사, 제러미 스타인 이사 등 단 3명에 불과하다. 의결권으로 보면 연준 통화정책이 민간 대형은행의 입김 아래 놓인 것이다. 옐런 의장의 투표권도 1표에 불과하다.
스탠리 피셔 부의장 지명자와 라엘 브레이너드 이사, 재지명된 제롬 파월 이사는 "오바마가 하는 일은 뭐든지 싫다"는 공화당에 막혀 아직도 상원 인준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공석인 엘리자베스 듀크 이사의 후임은 아직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스타인 이사는 오는 5월28일 중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연준 역사상 정부 측 FOMC 위원의 공석이 4명인 적도 없는데 5월 말이면 5명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 측 인사 3명이 상원의 인준을 받더라도 5 대5 대결구도가 형성된다.
물론 지역 연준 총재들은 FOMC 위원이라는 데 더 자부심을 가져 민간은행의 로비나 사적 이익 때문에 공적 책임을 저버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해상충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남는다. 콘티브라운 연구원은 "지역 연준 총재들은 연준 규제를 받는 민간 대형은행이 선출하는 의심스러운 지위를 갖고 있다"며 "국민의 위임을 받은 대통령이나 상원이 지명하지 않은 인사들이 미 통화정책을 지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기관인 연준의 법적 지위가 더 이상 손상되기 전에 대통령과 상원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