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과학기술자상 11월 수상자로 선정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재료연구부 윤석진 박사(박막재료연구센터장)는 나노(nanoㆍ10억분의 1) 단위로 제어할 수 있는 `압전 초음파 모터`를 개발해 선진기술과의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도체와 광학부품, 군사ㆍ우주 분야 등 첨단 산업에서 일부 적용되고 있는 나노급 초음파 모터는 미국과 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만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핵심 부품이다.
이들 선진국이 기술이전을 기피해 관련 분야의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일본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번 윤 박사 연구팀의 초음파 모터로 기술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윤 박사가 개발한 초음파 모터는 모든 산업에서 동력장치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모터를 세라믹 소재로 만들어 더 강력한 힘을 내면서도 소음을 없앤 것이다.
모터의 회전속도는 출력과 반비례하기 때문에 회전 속도를 줄일수록 낼 수 있는 힘이 커진다. 이 때문에 기존의 모터는 감속장치(기어)를 달아 회전속도를 줄이고 있다. 더 많은 힘을 내기 위해서는 감속장치를 더 크게 달아야 하고 이에 따라 모터 전체의 크기도 비례해 커질 수밖에 없다.
윤 박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일과 자석 대신 `압전 세라믹`으로 모터를 만들었다. 압전 세라믹이란 압력을 가하면 전기를 발생시키고 전기 신호에 진동하기도 하는 특수 세라믹 소재로, 가스레인지의 점화장치나 가습기 진동소자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윤 박사의 압전 초음파 모터는 전기 신호를 받은 압전 세라믹이 기계적인 움직임을 통해 발생시키는 20KHz 이상의 초음파 대역을 활용해 구동시키는 모터다. 20KHz 이상의 주파수는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청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압전 초음파 모터는 기존 모터와 달리 소음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고속으로 구동되는 일반 모터에 비해 힘도 훨씬 세고 소형ㆍ경량에 전자기적 장애도 없다.
압전 초음파 모터는 또한 약 4나노미터(㎚)로 위치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 웨이퍼 생산과 같은 초정밀 작업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미ㆍ일 등지에서는 이미 카메라 렌즈의 자동조절 장치, 손목시계, 광디스크 등 여러 제품에 적용돼 쓰이고 있으며 향후 자동화 장비와 로봇, 각종 가전 등에 널리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윤 박사는 이 모터를 회전형과 직선형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놨다.
윤 박사는 이 같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지난 2000년 이후 65회에 걸쳐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국내 24건, 해외 10건의 특허를 등록하거나 출원 중에 있다. 특히 선진국들의 기술이전 회피로 부품개발이 어려운 상황에서 끈질긴 노력 끝에 독자적인 구조설계로 국내외 특허를 획득한 것은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인터뷰] "선진국 콧대꺾이게돼 뿌듯"
“나노 위치제어 초음파 모터 분야에서 콧대높은 선진 기술을 따라잡았다는 사실이 가장 뿌듯합니다.”
윤석진 박사는 미래 나노 시대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줄 수 있는 기반 기술로서 압전 초음파 모터의 의미를 이렇게 강조했다.
윤 박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가 일반적인 선입견 속의 `과학자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물임을 금방 알아챈다. 다부진 체격과 서글서글한 눈매, 굵고 힘있는 음성 등이 실험실 속 과학자보다는 활동적인 운동선수나 기업가를 쉬이 떠올리게 한다.
“학교 다닐 때도 `잘 놀았다`고 해야 할까요. 아주 외향적인 성격이어서, 노벨상 받기엔 적합하지 않을지 몰라도 추진력이 필요한 한국적 과학 현실에는 그럭저럭 맞는 것 같습니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건네는 윤 박사가 과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연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할 당시 `너무 공부를 안했다`고 자책하며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연구원 채용면접을 할 때도 성격이 활달한지, 술은 잘 먹는지, 잘 노는지를 눈여겨 본다고 했다. “요즘은 잘 노는 사람이 연구도 잘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런 그의 성격 덕에 연구팀원들의 KIST 생활은 그다지 안락하지 못하다. 윤 박사는 KIST에서 `박막재료연구센터장`과 함께 `달리기 동호회장`이란 직함도 갖고 있다. 그의 팀원들도 처음 `반강제`로 마라톤을 시작해 이제는 자발적으로 열심히 뛴다.
새벽 별을 보며 집을 나와 헬스로 체력을 다진 뒤 출근해 보통 밤10~11시쯤 귀가하면서도 팀원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며 연구실 얘기, 사는 얘기를 주고받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의 대한 사회적 대우가 아직 부족해 전반적으로 사기가 침체돼 있지만 항상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는 윤 박사는 “5~10년후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더 많은 땀을 흘리겠다”고 다짐했다.
◇약력
▲83년 연세대 전기공학과
▲92년 연세대 공학박사
▲95~96년 미 펜실베니아 주립대 포스트닥
▲88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원
▲2000년~현재 한국전기전자재료학회 편집위원
▲2001년~현재 고려대 객원교수
▲2003년 KIST 박막재료연구센터장
<김문섭기자 cloone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