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2015년을 그룹 재건의 원년으로 선언했다. 지난해 지주사 격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졸업했고 아시아나항공 역시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완수해 체력을 길렀다면 올해는 이 계열사들을 다시 품에 안아 명실상부한 부활에 성공하겠다는 큰 그림을 내놓은 것이다. 주변의 일부 우려도 있었지만 자신감이 있었다. 박 회장은 지난 1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상선여수(上善如水·최고의 덕은 흐르는 물과 같다)의 자세로 그룹 계열사 인수작업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건하는 것이 이치에 맞고 준비도 잘돼 있다는 평소 생각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3월 이후 금호산업과 금호고속 인수전을 둘러싼 환경이 조금씩 달라지며 박 회장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먼저 그룹의 모태인 금호고속에 대해서는 대주주인 IBK-케이스톤 사모펀드를 비롯한 채권단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인수조건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3월9일 금호고속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서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금호터미널·금호고속 우리사주조합 컨소시엄을 인수주체로 내세웠다. 4,000억원대에 달하는 인수자금 부담을 나누기 위한 포석이다. 하지만 채권단은 "새 주인을 찾는 금호산업이 금호고속을 인수하는 주체로 나설 수는 없다"며 이 제안에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플랜B를 다시 가져오라는 뜻이다. 채권단 내부에서는 "박 회장이 일단 시간만 벌자는 지연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현재 채권단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 회장의 제안을 변경하는 방안을 놓고 물밑교섭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과 채권단 간 갈등의 불똥은 이어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에게로 튀었다. 금호타이어는 지난달 31일 주주총회를 열어 박 부사장을 대표이사에 선임하기로 의결했다. 부자(父子) 모두 대표이사직에 올라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인 2일 산업은행 등 금호타이어 지분 42.1%를 보유한 채권단은 긴급 주주협의회를 열어 박 부사장의 대표이사 선임안을 사실상 무효화했다. 채권단은 표면적으로 선임 과정의 절차적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내부적으로는 금호그룹과 채권단 간 뿌리 깊은 갈등이 원인이 됐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박 부사장은 이날 직접 채권단을 찾아가 설득했으나 끝내 결정을 뒤집지는 못했다고 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이 금호산업 인수에 대한 강한 의지를 거듭 강조하면서 박 회장의 입지가 좁아지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시점까지는 박 회장이 그룹 재건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룹의 핵심인 금호산업의 경우 설령 호반건설이 이달 중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더라도 결정적인 우선매수청구권을 박 회장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금호산업 인수에 성공하면 계열사인 금호터미널의 보유현금 등을 활용해 금호고속 인수 카드도 꺼내 들 수 있다. 금호터미널은 2013년 광주신세계 부지를 신세계에 20년간 대여하고 이 대가로 5,000억원의 보증금을 받았는데 이것이 금호고속 인수의 마중물로 쓰일 수 있다.
또한 금호고속 인수와 관련해서는 박 회장이 IBK펀드에 매입대금을 완납해야 하는 기일이 오는 6월 초로 아직 두 달가량 남아 있고 또한 이때까지 돈을 내지 못해도 이후 공개입찰에 뛰어들 수 있어 여유가 있는 편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일단 금호산업만 품에 안으면 나머지 문제는 예상 밖으로 수월하게 풀릴 수 있는 구조"라며 "박 회장이 최근 현직에서 물러났던 'OB'들을 다시 불러가며 대관 업무에 힘쓰는 것도 이런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