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이기환 소방방재청장

"기후변화 적극 대응…수방대책, 도시형으로 바꿔나갈것"



한 기관만의 노력으론 재난예방 불가능… 유기적 협력체제 구축
미래 기상현상 예측해 방재 새 가이드라인 마련… 시설물 설계기준에도 적용
투수성 포장 의무화등 도시개발 단계부터… 수방대책도 대폭 강화
"자연재해는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인명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15명의 생명을 앗아간 우면산 산사태 등 유례가 없었던 집중호우 피해현장에서 인명구조와 피해복구를 진두 지휘한 이기환(56ㆍ사진) 소방방재청장. 취임 이후 한 달 내내 비상근무를 하다시피 한 이 청장을 만났다. 그는 "호우로 피해를 본 국민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재난대응체계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고 사과했다. 이번 집중호우 때 교통통제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올림픽대로 등 간선도로가 마비돼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고 경보체계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소방방재청 등 유관기관의 노력으로 호우 피해는 빠르게 복구된 상태. 도로 하천 등 공공시설 및 사유시설은 군인ㆍ경찰ㆍ공무원ㆍ자원봉사자 등 32만명과 장비 3만여대가 투입돼 응급복구가 완료됐다. 응급복구에 이어 오는 9월부터는 본격적인 복구공사에 착수, 내년 장마철 이전에 복구를 끝낼 계획이다. 또 피해지역을 면밀하게 분석해 개선이 필요한 곳은 다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항구적인 복구가 이뤄질 예정이다. 이 청장은 "재난 예방은 어느 한 기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면서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드러난 유관기관 간 협조 부족과 재해 예방시스템 미비 등 문제점들을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소방방재청은 앞으로 서울시ㆍ경찰청ㆍ도로공사 등과 긴밀하게 협조해 선제적 교통통제, 지역별 강수량에 따른 침수 위험지역 예측정보 사전 제공 등 공조시스템을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또 도로 침수와 교통통제 상황을 휴대폰 재난문자방송과 라디오ㆍTV뿐 아니라 트위터ㆍ미투데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전파할 예정이다. 중앙 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조체제가 미흡할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재난대응능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청장은 "시ㆍ군ㆍ구 재난상황실은 전담인력 부족으로 돌발적인 재난이 발생할 경우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면서 "비전문가가 재난관리 부서장으로 있거나 재난관리 부서와 건설ㆍ하천관리 부서가 이원화돼 협조가 안 되는 지자체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소방방재청은 지자체가 재난관리 부서에 유경험자 위주의 전문인력을 우선 배치하고 일정 기간 전보를 제한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할 방침이다. 또 예방ㆍ대비ㆍ대응ㆍ복구 등 단계별로 경험이 풍부한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이원화된 재난관리체계도 일원화하기로 했다. 지난달 26~29일 내린 집중호우로 3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고 재산피해는 3,700억여원에 달했다. 이처럼 피해가 컸던 것은 최근의 집중호우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기존 방재시스템을 무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청장은 "최근 몇 년 사이 폭우가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서울의 경우 3일간 누적강우량이 587.5㎜에 달했으며 27일 오전 관악구에서는 시간당 110㎜에 이르는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 같은 강우 변화는 지구온난화와도 관련이 깊은 것으로 분석된다. 유엔 산하 IPCC(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가 간 협의체)에 따르면 우리나라 6대 도시 평균기온은 지난 100년간 무려 1.7도가 오르며 세계 평균(0.74도 상승)을 크게 웃돌았다. 우리나라 6대 도시 온도는 앞으로 2020년까지 0.9도, 2050년까지 2도, 2100년까지 4.2도가 추가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급격한 도시화로 비가 오면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하수관로로 집중되고 있다. 그 결과 배수용량을 초과하는 비가 내리면 저지대로 넘쳐나게 된다. 이번에 강남 일대에서 벌어진 침수피해가 대표적인 예다. 대도시들은 대형 건물 건립과 콘크리트 포장, 무분별한 산 개발이 더해지면서 불투수층이 급증했다. 통계에 따르면 서울 지역 불투수 면적은 1962년 7.8%에 불과했지만 2006년에는 47.5%로 늘었다. 이 청장은 "기후변화를 반영한 수방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특히 수방대책을 도시형으로 바꿔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방방재청은 도시 내 하수도ㆍ배수펌프장ㆍ집수정 등은 소관 부처별로 설계기준이 달라 방재대응능력이 떨어진다고 보고 이를 지역별 방재목표 강우량을 설정하는 제도로 바꿀 계획이다. 종전 시설물별 빈도 개념 대신 강우 강도를 반영해 지역별 통합방재 성능 목표로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이 청장은 "방재 기준을 상향 조정한다고 해도 그 많은 도시 하수관 용량을 모두 늘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그래서 30년, 100년에 한번 오는 강우량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지역별 강우 강도를 기준으로 지역별로 차별화된 설계목표 기준을 정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소방방재청을 중심으로 최근 도시형 재난을 막기 위해 재난종합 개선대책을 마련했다. 인구밀집도시 위주로 하수관거 확장 및 개선, 배수펌프장 용량 확대, 빗물 저류시설 설치 등 방재시설 확충사업을 집중적으로 보충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배수가 잘 안 되는 하수관거를 확장, 개선하는 데 1조127억원, 배수펌프장 용량을 늘리는 데 6,050억원을 투입하는 등 방재시설 확충에 2015년까지 모두 3조1,699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강풍 대비 내풍 설계기준 강화, 전력설비 보강 등도 추진된다. 폭설에 대비해 국도 교통통제 기준을 마련하고 제설 책임기관 간 협의체도 구성, 운영하게 된다. 소방방재청은 미래 기상현상을 예측해 방재기준 적용을 위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방재청은 최근 개최한 국제세미나에서 2100년에는 현재(100년 빈도 1시간 우량 67㎜, 1일 우량 306㎜)보다 1시간 우량은 20%, 1일 우량은 15%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또 해수면은 2100년까지 30㎝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이 청장은 "세미나 등에서 나온 의견을 수렴해 방재기준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이를 각종 방재시설물의 설계기준에 반영하도록 하는 등 기후변화에 대한 선도적 방재정책을 실행시켜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해 도시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수방대책이 강화된다. 신도시를 건설할 때에는 빗물이 땅에 스며들 수 있도록 투수성 포장과 투수성 보도블록 등의 설치를 의무화할 방침이다. 이 청장은 "현재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시설에는 지하 저류시설 설치가 의무화돼 있지만 사유시설에는 이 같은 규정이 없다"면서 "관할기관인 국토해양부와 협의해 용적률 상향 등의 인센티브를 줘 빗물 저류시설 설치를 유도하겠다"는 복안도 내놓았다. 이 청장은 4대강 사업으로 올해 수해피해가 줄었다는 입장을 보였다. 퇴적된 토사를 준설함으로써 홍수위가 낮아졌고 물그릇이 커짐에 따라 농경지 침수 등의 피해가 줄었다는 것이다. 이 청장은 "올해 장마와 비슷한 강우량을 기록한 1998년과 2006년에 비해 올해 인명과 재산피해가 10분의1 정도에 그쳤다는 분석이 있다"면서 "한강을 비롯한 4대강 수계 전체 피해액 역시 현저하게 줄었다"고 소개했다. 소방방재청은 풍수해보험을 관장하고 있다. 이 청장은 "홍보활동 등으로 풍수해보험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지난해 가입자가 30만명을 넘어서는 등 보급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상실에 빠진 피해주민에게 풍수해보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2006년 시범 도입된 뒤 2008년 본격적으로 시행된 풍수해보험은 전체 보험료의 55~62%를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풍수해보험 예산은 지난해 68억원에서 올해 90억원으로 크게 확대됐다. 이번 수해 때 풍수해보험은 큰 도움이 됐다. 풍수해를 입은 1,429가구에 보험금 40억원이 지급돼 긴급 피해복구에 쓰일 수 있었다. 소방방재청은 앞으로 지진피해를 보장하는 보험 개발을 추진하고 거주시설 구조ㆍ형태와 대상 재해별로 보험상품을 다양화하는 한편 소상공인 상가 등 자연재난 사각지대로까지 보험 대상을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이 청장은 현직 소방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방방재청 수장에 올랐다. 그런 만큼 이 청장에 대한 안팎의 기대감이 높다. 이 청장은 "이제는 불을 끄는 단순업무에서 벗어나 생활안전ㆍ긴급구호ㆍ복지 등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조직이 요구되고 있다"면서 "현장 중심의 실용적 정책을 만들고 책임과 효율을 중심으로 소방조직을 재편해 사회환경 변화에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청장은 직원들의 복지 향상과 사기 진작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다. 먼저 소방공무원의 근무여건 개선을 위해 3교대 근무를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현재 87%인 3교대율을 내년 말까지 100%로 높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 751명을 충원하는 등 내년까지 1,816명을 늘린다. 이 청장은 "3월 관련 법률이 개정돼 소방공무원이 직무수행 중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을 경우 군경과 동일하게 국가유공자로 예우받게 됐다"면서 "3년으로 치료기간이 제한됐던 공상자 치료도 기간에 관계없이 완치될 때까지 치료비가 지원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선친 보며 꿈 키운 3대째 소방관 가족
■이기환 청장은 취임직후 수해현장으로…타고난 야전체질
고졸로 출발 박사학위 받은 성실함도 유명
"취임하자마자 우면산 산사태 등 집중호우로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는 사태를 수습하느라 쉴 틈이 없었어요. 체력에는 자신이 있는데…. 비상근무를 한 달간 하다 보니 결국은 지독한 몸살이 찾아오더군요." 이기환 소방방재청장은 타고난 야전 체질이다. 건장한 체격,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거침없는 언변은 그가 소방관 출신임을 곧 바로 확인시켜준다. 지난달 22일 취임 직후 이 청장은 곧바로 수해현장으로 달려갔다. 젊은 시절 화재현장을 누빌 때는 강철체력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전국을 강타한 이번 집중호우는 그로서도 녹록지 않았다. 이 청장은 "소방공직에 몸담은 30여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이 청장은 3대가 소방관이다. 공직기간을 모두 합치면 75년에 이른다. 선친인 이극의씨는 40년간 소방관생활을 하다 순직했다. 지난 1986년 구미소방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화재현장을 지휘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갑자기 쓰러졌다. 과로사였다. 아들 이강민(30)씨는 지난해부터 강원도에서 소방사로 근무하고 있다. "선친을 보며 자연스럽게 소방관의 꿈을 키웠다"는 이 청장은 힘든 일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선친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79년 소방간부후보생2기에 합격해 이듬해 소방위로 임용되며 소방관의 길을 걸었다. 부산시 소방본부장, 소방방재청 소방정책국장,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장 등 요직을 거쳐 소방방재청 차장으로 근무하다 현직 소방관 최초로 소방총감으로 승진, 소방방재청의 수장에 올랐다. 이 청장은 '성실하게 살아라. 남을 돕는 삶을 실천하라'는 선친의 말씀을 몸소 실천해왔다. 고졸 학력으로 출발했지만 대학 과정을 거쳐 박사 학위까지 받은 것도 이 같은 성실함 때문이다. 학업을 병행하면서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휴대폰은커녕 호출기조차도 없던 시절이었죠. 대학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고민 끝에 강의가 있을 때면 무전기를 들고 다녔죠. 쉬는 시간마다 무전을 청취했어요. 불이 나거나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현장으로 출동해야 했거든요." 이 청장은 3만여명 소방조직의 수장이면서 동시에 현직 소방관들에게는 본받고 싶은 선배이기도 하다. 격식을 따지지 않고 대인관계 또한 원만해 직원들로부터 깊은 신임을 얻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약력 ▦1955년 대구 ▦영남고, 한국방송통신대 ▦경북대 행정대학원 도시행정학석사 ▦대구대 일반대학원 행정학박사 ▦소방간부후보생 제2기 졸업 ▦대구시 중부ㆍ서부ㆍ북부ㆍ동부소방서장 ▦부산시 소방본부장 ▦소방방재청 소방정책국장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장 ▦소방방재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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