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오만이냐 편견이냐

최근 국내외 기업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사회공헌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가 며칠 전 이례적인 논평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부가 사재 출연과 관련해 기업에 압박한 일이 없으니 쓸데없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얘기였다. 아울러 “근거 없는 억측 보도가 정부나 경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대내외적으로 심각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훈계까지 아끼지 않았다. 일단 기업인의 사재 출연 같은 행위가 경제나 정치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점을 모두가 새삼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뛰고 있는 기업인들의 반응은 영 딴판이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갈수록 쌓이기만 한다며 잔뜩 울상을 짓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쓸데없이 정부 탓하지 말고 알아서 사회에 기여하라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에서 가장 기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산업자원부 장관이 현대차의 1조원 헌납 직후 “사회공헌은 평소에 하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충고한 것도 아마 기업인들의 뇌리에는 생생할 것이다. 자기 돈을 쓰는 데 동물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 기업인들이 단순한 오해나 편견만 갖고 무분별한 행동을 일삼는다고 생각한다면 그리 현명한 판단은 아닐 듯하다.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아무리 윽박질러도 약자 입장에서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게 바로 작금의 세태다. 이 세상의 모든 시어머니가 ‘나만큼 잘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큰 소리를 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요즘 재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현대가의 경영권 분쟁 사태도 마찬가지다. 칼자루를 쥔 현대중공업그룹은 “당신을 보호해주겠다”고 떠들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현대그룹 측에서는 “보호받기 싫다”고 고개를 흔들고 있다. 짝사랑도 이정도면 남 보기에 몹시 역겨울 정도다. 그 다툼이 같은 집안에서 이뤄질 때에는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이달 말 또다시 대ㆍ중소기업상생회의를 열고 재계 총수들을 한꺼번에 불러들일 예정이라고 한다. 오라는 데 안 갈 사람은 없겠지만 보따리를 생각하면 이래저래 다들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을 듯하다. 정부야 속마음을 몰라주는 현실이 마냥 답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힘센 자의 오만과 약한 자의 편견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면 누가 선뜻 양보해야 할지는 분명할 듯하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