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선택의 순간들] <9> 신세계 "할인점(이마트)에 올인"

IMF때 공격투자…부동의 1위로<br>"백화점보다 수익성 커" 주력사업 과감히 전환<br>주요상권 부지 싼값에 사들여 '위기를 기회로' <br>신선식품·진열방식등 차별화…월마트도 무릎



“백화점이 모태인 만큼 신세계 내부에서조차 반대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움츠리고 있는 이 때야말로 할인점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결국 외환위기때 공격적인 투자로 싼 가격에 많은 부지를 확보했던 게 지금 이마트 성공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지난 97년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신세계는 갈림길에 봉착했다. 93년 11월 국내 최초의 할인점인 이마트 1호점(창동점)을 오픈한 이후 4년간 9개 점포를 운영하던 중 환란의 파고에 휩쓸려 사업 중단 위기에 놓인 것. 그때만해도 신세계의 주력은 여전히 백화점 부문인데다 할인점 사업이 큰 이익을 내지도 못하는 상태였고, 특히 구조조정 등 자금압박이 심해 내부에선 할인점 사업 폐지가 거론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경영지원실장(전무)이었던 구학서 신세계 사장은 “면밀히 검토한 결과 할인점이야말로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 줄 사업이 분명하다”며 오히려 ‘할인점 올인’을 주장했다. 구 사장이 내세웠던 당위성은 4가지. 우선 백화점시장에서 롯데가 치고 올라오는 등 경쟁이 치열해졌고, 설립비용과 공사기간에서 백화점 보다는 할인점이 훨씬 유리했고, 대도시 상권외 도시도 할인점은 효율적 선점이 가능했다. 특히 초기 투자비를 회수하는데 백화점은 통상 3년 이상 걸리지만 할인점은 1년 남짓 소요되는 등 자금회전율에서 월등하게 앞서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논리로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이명희 회장의 승낙까지 얻은 구 사장은 프라이스클럽과 카드사업을 매각하는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며 2,500억원의 자금을 마련, 전국 주요상권의 할인점부지를 대거 매입했다. 또 백화점을 짓기로 도면작업까지 마쳤던 산본, 전주, 해운대, 진주 등의 프로젝트를 모두 할인점으로 바꾸는 작업까지 단행했다. 결국 경쟁업체들이 긴축경영을 벌일 때 신세계는 오히려 단기간에 20~30개의 주요 할인점 부지를 확보하는 과감한 베팅을 펼쳐 외환위기때를 전후로 한국진출에 나선 월마트와 까르푸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위기를 기회로 바꿔 이마트가 할인점 업계 1위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기쁨도 잠시. 신세계는 또 한번 위기 속에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세계 유통업계의 공룡인 미국의 월마트가 98년 한국시장에 상륙한 것. 86년 유통개방한 대만의 경우 월마트 등 다국적 업체들의 진출로 대만 유통시장 모두 잠식당한 전례가 있어서 이마트의 패배는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처음엔 월마트의 명성 때문에 무척 긴장했습니다. 하지만 월마트에 없는 우리만의 강점을 살려 경쟁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서구식이 아닌 한국형 할인점으로 승부를 건 것이죠.” 신념에 찬 구 사장의 회고다. 이마트는 우선 월마트가 신선식품의 경쟁력이 약하다고 판단, 차별화를 위해 채소와 과일, 생선 등 신선식품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주력했다. 이는 미국인과 달리 신선식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소비자를 이마트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창고형 할인매장 방식도 대폭 개선했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게 천정까지 쌓아 올렸던 창고형 매장을 철수시키고 매장 전체의 진열 높이를 낮췄다. 신선식품을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의 습관과 동선을 고려해 상품 진열 방법도 바꿔 나갔다. 이런 가운데 이마트는 품질불량 보상제를 도입하고 물류시스템을 갖춰나가는 등 경쟁력도 야금야금 키워 나갔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한국 고객에게 맞는 매장과 상품으로 구성한 한국형 할인점의 손을 들어줬다. 남의 것이 아닌 자신만의 것으로 승부수를 던진 선택이 결국 세계 1위의 유통기업을 무릎 꿇게 만든 것이다. 월마트는 지난 5월말 이마트와의 경쟁에서 패배를 시인하고 신세계에 월마트코리아 매장 16개를 넘기고 한국시장에서 철수했다. 이후 승승장구하던 신세계 이마트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다시 한번 중대 기로에 섰다. 급격하게 경제 성장중인 중국 시장을 재공략할 때가 된 것. 특히 월마트 등 세계 굴지의 유통업체들이 이미 중국 정부 규제완화 정책에 맞춰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는 터라 더 이상 시간을 늦추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신세계는 97년 초 중국 이마트 1호점을 오픈한 이후 7년간 손을 놓고 있어서 재진출시 성공 여부가 불투명했다. “상황이 쉽지 않았죠. 목 좋은 곳은 모두 월마트, 까르푸가 입점해 있고, 나머지 부지도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마트만의 경영방법을 도입하면 중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선택은 적중했다. 서구식 창고형이 아닌 한국형 할인점 형태를 기반으로 중국인의 주요 교통 수단인 자전거 전용 주차장 마련, 무료 세차 서비스, 셔틀 버스 운행, 중국인 입맛에 맞는 매장 동선 구성, 홍보 전단지 차별화 등의 현지화를 접목시켜 단숨에 중국 소비자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이제는 중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부지를 내줄 정도로 이마트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구 사장은 흐뭇해 했다. 이렇듯 3번의 큰 고비 때마다 역발상의 선택을 통해 국내 할인점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냈던 신세계 이마트는 국내에서만 150여개까지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마트는 최근 월마트 매장을 인수, 이마트 간판으로 바꿔달며 현재 101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 中 진출 본격화하기까지
까르푸등 이미 선점 부지난에 국내매장 투어로 투자자 맘바꿔
이마트가 중국에 진출한 지 올해로 10년째다. 중국사업은 이마트의 글로벌 경영의 시작인 동시에 초일류 유통기업으로의 도약 여부를 가름할 핵심 전략이다. 현재 중국 이마트는 상하이에 5개, 텐진에 2개 점포를 운영하며 순항중이다. 하지만 중국 진출을 본격화하기까지는 몇 차례의 위기를 넘겨야만 했다. 신세계가 중국으로 눈을 돌린 것은 90년대 중반. 당시 국내 9개의 점포를 운영중이던 이마트는 일찌감치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던 중국 시장을 잡기 위해 97년 2월 상하이에 1호점을 오픈했다. 단일 점포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흑자를 기록하는 등 상권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자 이마트는 후속 출점을 준비했다. 그러나 97년말 외환위기로 인해 이마트는 중국 시장 공략의 꿈을 잠시 접어야 했다. 게다가 유통시장 개방으로 월마트, 까르푸 등 세계 1, 2위의 할인점이 국내에 속속 진출 하면서 더더욱 중국사업은 뒤로 밀렸다. 결국 5년 뒤인 2002년 국내 부동의 1위 할인점으로 올라선 이마트는 다시 한번 중국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중국 시장에 재진출하는 것은 첫 점포 개점보다 몇 배는 힘들었다. 전세계 25개 대형 유통업체가 이미 주요 도시에 점포망을 갖추면서 인지도를 높여간 반면이름도 생소한 이마트는 달랑 점포 하나만을 갖고 있는 작은 할인점이었기 때문. 특히 2005년 유통 개방을 앞두고 중국 시장은 할인점의 다점포화가 본격화되는 시기여서 2급, 3급 수준의 부지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이마트 중국총괄 개발운영팀의 김상학 부장은 "2호점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매일 상하이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좋은 부지는 까르푸나 월마트가 입점하기로 계약이 된 상태가 대부분이어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이 때부터 중국 투자자 접근 전략이 수정됐다. 종전 브리핑 중심의 개발 방식에서 국내 매장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이마트 제대로 알리기' 전략으로 전환한 것.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당시 상하이 푸시(浦西)지역의 부지 개발권을 갖고 있던 서안그룹 관계자가 이마트 가양점을 직접 둘러본 뒤 "중국에도 이마트와 똑같이만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 이 말 한마디로 그 자리에서 사전합의까지 마친 월마트 대신 이마트가 입점하기로 결정됐다. 중국에는 서구식의 창고형 할인점만 있었기 때문에 이마트의 낮은 판매대, 소량 판매, 밝은 매장, 빠른 계산 서비스 등 한국식 할인점에 중국 관계자들이 열광했던 것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신세계는 2002년 10월 상하이 유통기업인 지우바이(九白)그룹과 할인점 합자사업을 벌이기로 계약했다. 이는 신세계의 경영노하우와 지우바이그룹의 유통인프라 및 자금력이 결합해 대중국 사업에 탄력을 받게 된 의미있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때부터 중국 투자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004년 이마트는 2호점을 시작으로 지난해 3월 중국내 한국형 이마트의 모델 점포인 3호점을 열었고, 11월 텐진지역에 4호점을 개점하며 중국 북방지역 공략 교두보까지 마련했다. 올들어서는 연말 예정인 8호점까지 포함해 4개 매장을 오픈하는 등 매년 급속도로 점포망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마트는 5년내 상하이에 까르푸를 제치고 1위에 오르는 것은 물론 2010년까지 중국 전역에 34개의 점포를 출점, 이마트의 중국 정벌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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