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고객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서비스 이용에 불편이 없는지를 살펴보던 중 TV 리모컨에 가스 라이터가 테이프로 둘둘 감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리모컨에 가스라이터가 왜 붙어 있을까. 그 이유를 여쭤보니 “우리 남편은 이것 하나면 하루종일 잘 지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담배 피우기와 TV 시청을 주로 하는 고객 입장에서는 리모컨과 가스 라이터를 단순하게 결합함으로서 컨버전스(Convergence)가 가져다주는 효용의 만족을 톡톡히 누리고 있던 셈이었다.
디지털 컨버전스가 정보기술(IT)업계의 화두를 넘어 마치 유행처럼 자리잡으면서 곳곳에서 여러 서비스와 제품들이 묶인 다양한 컨버전스 기능들이 등장하고 있다. 워낙 많은 것들이 결합하는 만큼 정신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에 대한 생각과 배려는 어디쯤 가 있을까. ‘첨단과 최신’이라는 미사여구 속에 갇혀 어느새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나버린 것은 아닌가 반성해볼 때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경쟁자와의 의도적 차별화로 부각시킨 요소가 오히려 고객의 효용에서 오는 만족도를 저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경기불황을 타고 필수기능만을 남긴 디지털 디버전스(Digital Divergence) 제품들이 출현하면서 고객들의 마음을 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방송통신융합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초기 디지털 케이블 TV가 시장에 출현했을 때는 기존 시장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공문서 업무’와 ‘TV 피자배달 서비스’ 등 20여 가지에 달하는 각종 양방향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하면서 최첨단의 이미지가 가져다준 만족감에 스스로 도취돼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차별화를 모토로 한 양방향 서비스들에 대해 고객들은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복잡한 서비스 사용법이 그 이유였다. 양방향의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면서 리모컨이 마치 컴퓨터처럼 복잡해지는 것을 ‘차별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에만 급급했을 뿐 꼭 필요한 서비스를 간단한 조작만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고객을 배려하는 데는 소홀했던 결과였다.
점점 거세지고 있는 컨버전스의 열풍, 하지만 이제는 어떤 기능을 추가하고 더하는 데 열중하기보다는 고객의 효용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제거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공급자 위주의 차별화를 부각하기보다 좀 더 편하고 쉽게 서비스를 이용하기를 원하는 고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섬세한 접근법이 요구되는 것이다.
리모컨에 매달린 가스 라이터가 주는 교훈. ‘첨단과 최신’이라는 개념에 함몰된 우리 모두에게 새롭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