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투자여건하에서는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설문조사에 응한 모 대기업 임원은 “정부가 민간기업에 투자 촉진을 당부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부발 투자 리스크를 해소시켜주는 게 먼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감세를 논의하다 갑자기 증세가 거론되는 등 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신사업에 적극 뛰어드는 게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설문조사 결과도 예외는 아니다. 설문 응답을 지수화해 산출한 투자추세지수ㆍ투자여건지수ㆍ기업가정신지수(각 만점 200점) 등은 ‘상당히’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향후 투자 지속 여부를 살펴보는 투자추세지수는 평균 63.5점을 보였다. 하반기에 상반기보다 투자 규모를 증가시킬 예정이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 기업이 62.5%에 달했다. ‘그렇다’라는 대답은 37.5%에 불과했다. 산업별로 보면 철강, 자동차, 전기ㆍ전자 산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에서 하반기에 상반기보다 투자를 늘리지 않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투자 감소 전망은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높게 나왔다. 투자 여건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불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여건지수는 평균 102점을 기록했다. 현 투자여건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26.0%, ‘아니다’는 74%를 기록, 기업 10곳 중 8곳가량이 현재 투자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불만족을 표시한 응답 비율을 업종별로 보면 석유화학이 100%를 기록해 가장 높았고 조선ㆍ철강ㆍ건설ㆍ식품 등에서 60% 이상을 보였다. 아울러 기업 규모와 매출에 상관 없이 불만족 응답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이 특징이다. 그나마 현재 정부 지원이 집중되고 있는 자동차업종에서는 현재의 투자여건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그렇다’와 ‘아니다’가 각각 50%를 기록했을 뿐이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희망을 표시했다. 향후 투자여건이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다’ 76%, ‘아니다’ 24%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 현대경제연구원 측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기업들의 투자여건 개선 희망이 자칫 ‘희망’으로 끝날 가능성도 높다는 점이다. 신사업 추진 등을 지수화한 기업가지수가 평균 104.5점을 기록했는데 내용면에서 더 안 좋게 나왔다. 설문조사 기업 10곳 중 8곳은 지금이 다소 리스크가 있더라도 신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건설과 자동차ㆍ석유화학ㆍ유통 등은 응답비율이 100%에 달했다. 하지만 신사업 실행 여부에 대해서는 기업 10곳 중 7곳가량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익이 기대된다면 투자 리스크가 크더라도 투자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24.5%에 그친 반면 ‘아니다’는 75.5%에 달했다. 이 같은 투자 리스크 회피 성향은 조선, 철강, 전기ㆍ전자, 건설, 물류 등 사실상 전업종에서 나타났다. 이는 많은 기업들이 신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과 육성에는 적극 나서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부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투자 리스크 회피 성향 이면에는 정책 리스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며 “하나의 예로 현재 출구전략이 논의되고 있는데 확실한 방향이 정해지지 않아 기업들은 앞으로 이것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녹색성장 분야도 제도와 규제가 완비돼야 기업들이 리스크를 측정할 수 있는데 현재 이것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며 “소비 진작, 정책 일관성 등 정부의 확실한 정책 로드맵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반영하듯 기업들은 정부가 하반기에 내수부양과 외환시장 안정, 수출지원 등에서 확실한 로드맵하에 적극 지원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기업투자지수 어떻게 산정됐나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기업 투자와 관련한 응답을 ‘투자추세지수, 투자여건지수, 기업가정신지수’ 등으로 나눠 지수화 했다. 현재의 투자규모, 향후 투자증가여부, 투자여건에 대한 만족, 투자여건, 신사업 추진, 리스크 감수 등 6개의 질문을 했다. 각 지수는 해당 질문에 그렇다 라는 응답비중에서 그렇지 않다라는 응답비중을 뺀 뒤 100을 더하는 방식으로 산출됐다. 최소 0점에서 최대 200점까지다. 200에 가까울수록 기업들이 투자에 적극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