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은 경기 사이클이 들쑥날쑥하고 업황에 따라 수주의 변동 폭이 크기 때문에 인력운영의 탄력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업종이다. 전통적으로 사내하도급 형태의 생산방식을 활용해왔다. 미국과 독일뿐 아니라 일본·중국 같은 주요 경쟁국들 모두 사내하도급을 널리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상 '물량팀'이라는 계약 형태가 존재한다. 조선업은 발주처의 요구를 맞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공정이 지연되거나 발주자가 설계를 변경할 경우 협력업체들은 추가 작업을 위해 물량팀장과 한시적으로 도급계약을 맺는다. 이들의 근로 조건은 낮지 않다. 현장에서는 어떤 물량팀은 갑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최근 물량팀 활용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원청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도급 구조가 다단계로 왜곡되고 있는데 원청이 협력업체의 물량팀 활용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오는 12월까지 실태조사를 하고 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이러한 정치권의 움직임은 2차 도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단계'라는 어휘의 부정적 어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최근 하급심도 현대자동차와 직접 도급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2차 협력업체 근로자까지 현대자동차의 근로자라고 봤다. 만약 현대자동차의 근로자가 아니라면 '파견근로자의 상용화와 장기화 방지라는 입법 취지를 훼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위해 수많은 협력업체들을 무시하고 대기업 하나만을 기업으로 인정하는 우를 범했다. 협력업체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근로자들을 채용하는 계약의 자유를 박탈한 것과 다를 바 없다. 판결 후 현대자동차 협력사 대표와 현장 관리자들이 자신들을 무시했다며 비난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협력업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도급업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원청이 간섭한다면 오히려 불법파견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이 정부의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모습마저도 법원이 불법파견의 근거로 본다는 것은 이번 현대자동차 판결에서도 확인됐다. 정부와 사법부의 엇갈린 행보로 인한 산업 현장의 갈등과 혼란·피해를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