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인사, 관료 출신은 KB지주로 가닥 ?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 공모 마감을 2시간여 앞둔 6일 오후 3시. 접수처인 서울 회현동의 우리은행 본점 20층으로 회장 후보 접수 대행인들의 발길이 분주하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부터 이팔성 회장의 후임 공모에 들어갔지만 아무도 지원하지 않다가 치열한 눈치보기 끝에 마감 막판이 돼서야 13명의 무더기 접수가 이뤄진 것이다.
차기 우리금융 회장은 한국금융의 물줄기를 바꿔놓을 수 있는 우리금융 민영화 책무를 떠안게 된다. 이 같은 중대한 작업을 앞두고 있음에도 금융당국은 회장 선임과 관련 어떤 사인(?)도 주지 않았다. 민영화 작업의 적임자라는 큰 기준만 제시됐다. 이러다 보니 지금까지의 회장 공모전은 오리무중이었다. 하지만 6일 회장 공모 마감결과, 그 동안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관료 출신들이 대부분 공모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베일에 쌓여 있던 차기 회장의 윤곽이 잡히는 모습이다.
◇우리금융 내부 출신 각축전…이순우 행장 겸임설도= 이날 공모 마감일 직전까지만 해도 임종룡 전 국무총리조정실장,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등 고위 관료 출신이 대거 응모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직을 걸고’ 우리금융 민영화를 완수하겠다고 밝혔고 이를 위해서는 내부 인사보다는 강단 있고 추진력 있는 관료 그룹이 오지 않겠냐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한때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임 전 실장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오늘 연대 석좌교수로 부임했다”며“금융지주사에 응모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과 재경 관료 출신 정치인으로 후보 물망에 올랐던 배영식, 이종구 전 의원도 신청 의사가 없는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이번 우리금융 회장 선출은 이종휘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 이덕훈 키스톤(사모펀드) 회장, 이순우 현 우리은행장 등 우리금융 출신 의 경합으로 사실상 구도가 짜여졌다.
이날 이종휘 위원장을 시작으로 이순우 우리은행장, 이덕훈 키스톤 회장, 윤상구 전 우리금융지주 전무 등 4명의 우리금융 출신 인사들이 공모에 응했다. 김준호 현 우리금융지주 부사장도 접수했지만 관료 출신이다. 이밖에 조동성 서울대 교수, 김은상 전SC은행 부행장 등 학계, 업계 인사 9명도 도전장을 냈지만 사실상 우리금융 출신 거물들의 경합으로 압축됐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친박계로 분류되는 서강학파(서강대학교) 출신인 이덕훈 회장은 청와대의 부담 때문에 결국 이종휘위원장과 이순우 행장의 2파전으로 압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지난달 산업은행 회장으로 박근혜 대선 후보 당시 캠프 출신이자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홍기택 서강대 교수를 임명하면서 또 다시 금융계 낙하산 인사가 재연되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고 이에 따라 우리금융 내부 출신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관측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공공기관장의 낙하산 인사는 없다고 강조했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회장 선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금융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금융을 잘 아는 내부 인사가 낙점될 경우에 민영화는 물론 내부 사정을 잘 알아 차기 회장 인선을 놓고 흐트러진 조직 추스리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순우 현 우리은행장의 회장 겸임설도 얘기되고 있다. 이 행장의 임기는 내년 3월로 1년이 남았다. 금융 당국은 오는 6월까지 민영화 방안을 만든 뒤, 이르면 연내 매각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민영화 이후 물러날 사람이 필요하다고 밝힌 상황. 결국 새 사람을 앉히기보다 이 행장을 겸임시키면 조기 민영화와 여론 반발도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KB금융 회장과의 치열한 저울질도= 관료 출신이나 친박 실세로 분류되는 이들이 사실상 모두 우리금융 회장 공모를 접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내달 윤곽이 드러날 KB금융지주 회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당국이 양대 금융지주사인 우리금융과 KB금융회장의 중복 지원을 막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이에 따라 정계, 관계 등의 유력 후보군들이 막판까지 저울질을 했다는 분석이다. 옛 재정경제부 관료 출신인 배영식 전 의원은 이날 KB금융지주 회장 응모 여부를 묻자 가부 여부를 밝히지 않으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대표적 친박계 인사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KB금융 회장 후보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후문이다.
향후 우리금융을 인수하거나 합병할 잠재 후보군으로는 KB금융이 사실상 유일한 상태고 이를 위해서는 KB금융 회장에 금융계 인사뿐 아니라 중량감 있는 외부 인물을 임명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신제윤 위원장도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우리금융의 민영화를 위해서는 메가뱅크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힘으로써 KB금융의 인수 내지 합병을 내비친 바 있다.
KB금융 회장의 선출 방식은 우리금융과 달리 공모 방식이 아니라 금융지주 내부의 경영진과 사외이사, 외부 인사 등의 내외부 추천을 거쳐 뽑힌다는 것도 커다란 변수다. 우리금융회장 후보로 한때 거론됐던 진동수 전 위원장, 전광우 전 국민연금 이사장 등은 실제 공모에 응하지 않았지만 당국이 여러 경로를 통해 KB금융 회장 추천에 나설 경우에 회장에 응모하는 모양새를 취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 손실 문제로 법정에 섰다 무혐의 판결을 받은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도 또 다시 KB지주 도전을 통해 명예 회복을 노리고 있다. 물론 지금 단계에서는 KB금융지주 경영진의 선임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이병관 기자 박해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