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책상과 현장의 거리


과천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면서 도시ㆍ주택ㆍ토지ㆍ교통 등 국토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데 관련되는 정책을 수립하는 업무에 종사했던 필자가 최근 3년여 동안 일선 현장에서 정책을 실제로 집행하는 입장에 서서 일하다 보니 정책을 수립하는 책상과 집행이 이뤄지는 현장 간의 거리가 결코 작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현장의 일이 잘 되려면 그 거리가 최소화돼야 할 텐데 그러한 거리가 왜 생기는 걸까. 첫째는 어떤 문제가 발생되고 정부가 그 문제를 인지하고 정책을 수립한 후 실행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문제이다.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보면 변화의 속도가 가장 빠른 것이 기업이고 가장 느린 것이 정부라고 한다. 문제 자체가 난해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때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관련 제도를 고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 제도가 시행될 때쯤에는 이미 상황이 바뀌어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집값이 오르고 부동산 투기가 문제가 돼 대책을 수립했는데 그 대책을 시행하기 위한 관계 법령이 실제로 시행될 때쯤에는 이미 부동산 경기는 정점을 지나 하강국면에 있어 오히려 경기침체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최근의 상황도 그러한 예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정책 수립자와 집행자, 양측 시각차의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정책을 입안하는 중앙부처의 입장에서는 문제를 거시적으로 보고 정책을 수립하게 되지만 실제로 정책을 집행하는 현장에서는 현안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정책을 기본으로 삼아 현장에 적합하게 수정 보완할 때 비로소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전국에 동시에 적용되는 법령과 제도를 운영할 수밖에 없으나 지역적 특수성이 있는 사안의 경우에는 각 지역마다 여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불합리한 점이 나타날 수 있다. 게다가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전국을 동일한 잣대로 재단하는 정책은 각 지역의 구체적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과 집행, 책상과 현장 간의 거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필자는 무엇보다도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많은 문제가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절로 해결될 수 있는데 정부가 성급하게 개입해 항생제가 병균의 내성을 키우듯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부의 시장개입이 불가피한 경우라 하더라도 중앙정부에서는 큰 줄기만 정하고 각 지역별로 재량을 가지고 구체적인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자는 것이다. 물론 일선 현장에서 실수를 범하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언제까지 지방자치단체를 어린애 취급할 수만은 없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지방자치단체의 문제해결능력을 키워가도록 하는 것 또한 중앙정부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