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자동차 안전사양 강화하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지난 10년간 절반 이상 줄었다. 나쁘지 않은 성과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교통안전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하위 수준이다. 같은 기간 다른 국가들이 그 이상의 교통안전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가령 스웨덴ㆍ영국 등은 이미 교통사고율이 우리나라의 6분의1 수준인데도 혁신적인 교통안전 정책을 펴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선택을 안전한 쪽으로 유도하거나 강제하는 정책이 눈에 띈다. 안전한 선택을 디폴트 옵션화하는 개념이다. 마치 몇 년 전 화제가 됐던 행태경제학 이론인 넛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유럽선 음주운전 방지장치 등 확산


예를 들어보자. 안전벨트는 차량 충돌사고 시 탑승자의 자세를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한 장치다. 그래서 모든 좌석에 안전벨트 착용을 권장하지만 우리나라는 뒷좌석 안전벨트 착용률이 매우 낮다. 하지만 유럽에서 생산되는 차량은 대개 뒷좌석이라도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으면 운전자에게 경고음과 신호가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뒷좌석 안전벨트 착용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안전을 위해 필요한 줄 알면서도 귀찮다고 착용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효과적인 장치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7월부터 자동차에 음주 측정장치 비치를 의무화했다. 음주운전 포기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통해 연간 500명 이상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버스 등 사업용 차량은 기사가 술을 마셨을 경우 아예 시동이 걸리지 않게 하는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목숨을 책임지는 기사의 음주운전은 아예 불가능하고 제한속도를 넘지 못하게 강제하는 기술 등도 이미 상용화돼 있다. 졸음운전을 자동 감지해 운전자를 정신 차리게 하는 기술도 있다고 한다.


이렇듯 새로운 기술로 교통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음주ㆍ과속ㆍ졸음운전을 막을 수 있다면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을 널리 보급하려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안전한 차량이 좋지만 차값이 비싸져 사람들이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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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신차에 대해 뒷좌석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음과 신호 표시를 법으로 의무화한다면 어떨까. 차값은 조금 비싸지겠지만 자동차 제조사나 신차 구입자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유럽에서는 오는 2014년부터 신차에 대해 사고 시 사고 위치를 자동 전송하는 이콜(eCall) 시스템 부착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약간의 비용이 들지만 유럽연합(EU)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 발전에도 도움

안전을 위한 정책은 돈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비용이 우리나라에서 큰 부담이 될까.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은 유럽과 견줄만하다. 이미 주요20개국(G20) 국가이며 구매력지수로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서는 나라에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유럽에서 시행하는 정책을 못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세계적 자동차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국제 시장에서 국산 자동차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보다 높은 수준의 안전사양을 싼 값에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서 먼저 안전기준과 사양을 강화한다면 장기적으로 자동차산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줄이는 효과가 클 것이다. 이제 OECD 회원국 가운데 교통안전은 최하위권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교통안전은 더 이상 사람들의 자율에 맡겨진 선택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강요된 선택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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