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에너지전략 수립의 방향

김현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석유를 보는 관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전략상품’과 ‘시장상품’으로 보는 관점이다. ‘전략상품’으로 보는 관점은 19세기 후반 석유가 등장한 이래 지속돼왔다. 20세기 초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영국 해군함정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면서 석유는 전쟁수행의 필수자원으로 부상했다.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각국은 잇달아 국영 석유회사를 설립했으며 석유를 둘러싼 국가간 쟁탈전이 시작됐다. 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는 석유에 대한 각국의 필사적 욕구를 강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불과 5~6년 만에 유가가 10배 이상 폭등하면서 세계경제는 대불황에 빠졌다. 이후 석유는 군사적인 전략물자뿐만 아니라 경제안정을 위한 필수재화로 전략적 확보와 비축의 대상이 돼왔다. 80년대 후반 이후 국제석유시장의 발달과 함께 석유를 ‘시장상품’으로 보는 견해가 등장한다. 석유는 유통성이 뛰어난 국제 시장상품이며 저장 탱크만 있으면 세계 어디에도 자유롭게 조달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석유확보를 위한 개별 국가 차원의 노력보다 국제 석유시장의 안정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요구되며 과다한 석유확보 경쟁은 오히려 석유시장을 불안정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입장은 에너지의 ‘정치화’와 ‘시장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의 현실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9ㆍ11테러 이후 에너지의 세계는 ‘정치화’의 물결이 거세지고 이에 따라 국제석유시장의 불안정성도 심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요 에너지 소비국들은 경쟁적으로 에너지 확보에 나서고 있고 특히 거대 에너지 소비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석유시장에 의존하기보다 독자적인 에너지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에너지의 ‘정치화’와 이로 인한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방향으로 국가 에너지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인가. 첫째, 국가안보 차원에서 에너지의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한다. 한 가계의 안정적인 재테크에도 분산투자가 강조되는 마당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의존도가 50%에 달하고 석유의 중동의존도가 80%에 가깝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미국의 석유 중동의존도가 20%, 서유럽의 경우 16%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우리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동 지역에 우리 경제의 사활을 맡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유의 중동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는 중동 지역에 이어 제2의 석유생산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러시아를 주목해야 한다. 러시아는 향후 국제석유시장의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는 미국의 에너지 동맹국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세계의 에너지 지도는 이미 러시아와 카스피해 지역으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둘째, 에너지 자원확보를 위한 경쟁 및 갈등관계를 상호보완적 협력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한 포괄적 협력체제의 확립이 필요하다. 특히 위기를 대비한 에너지 안전보장 체제의 확립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경험한 석유 소비국들이 국제에너지기구(IEA)를 창설해 위기대응능력을 강화했듯이 동북아시아판 IEA(가칭 NEAEA)의 창설을 통해 석유공급 및 가격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석유비축의 강화와 융통시스템의 구축, 석유 비축기지의 공동 경영 및 이용 등은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될 수 있다. 셋째, 에너지 안보 개념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이제 에너지 위기는 발생요인과 파급효과가 기존의 물량위기를 넘어 가격위기, 나아가 국가안보상의 총체적 위기차원으로 다원화ㆍ복합화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국가 전략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합리적인 가격확보,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 정치적 리스크의 회피를 동시에 수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립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안보ㆍ외교ㆍ위기관리ㆍ통상ㆍ산업ㆍ과학기술 등의 정책연계를 강화해 국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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