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전문성 나눔' 문화 만들자

이영희 <㈜금강기획 사장>

바야흐로 연말이다. 이제 겨우 한장 남아 내년 달력과의 선수 교체를 앞두고 있는 달력을 쳐다보니 참으로 쓸쓸하고 허전하다. 이맘때가 되면 필자와 같은 감정이 인지상정인지 여기저기 온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많이 보게 된다. 계속되는 불황 탓에 너 나 없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지만 그 속에서도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연말연시처럼 꼭 특별한 때의 커다란 나눔이 아니어도 가진 것을 나누는 모습은 아름답다. TV 프로그램을 글썽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천원짜리 자동응답시스템(ARS) 성금모금에 몇번씩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르는 아내의 모습을 발견할 때도 그랬다.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삼삼오오 모여 보육시설을 방문해 물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대신 청소나 빨래, 혹은 김치 담그기 같은 허드렛일을 돕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도 감동을 받았었다. 최근에는 기업들도 성금이나 위문품 전달 같은 단순한 ‘전달형’에서 발전해 다양한 형태로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며 큰 사랑을 실천하는 ‘스킨십형’ 사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 건설회사는 불볕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여름 어려운 이웃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사랑의 집짓기에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참가해 직접 비지땀을 흘렸다. 또 다른 기업은 독거노인을 방문해 간호하고 말벗이 돼주는 프로그램을 지원하기도 하고 소년소녀가장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고도 한다. 어떤 화장품회사는 한개의 화장품이 판매될 때마다 그 수익금의 일부를 예술적 재능이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쓸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경영, 사회공헌에 대한 인식이 크게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또한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을 단순히 자선사업이 아니라 기업 이미지 제고를 통한 경쟁력 확보 전략으로 인식하게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 중에는 커다란 재원이 필요한 사업도 있고 말 그대로 직접 벽돌도 나르고 손을 잡는 스킨십형도 있다. 어느 것도 다른 것에 비해 의미가 작다거나 더 필요하다거나 할 수 없이 소중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지면을 통해서 필자는 조금은 다른 방향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소개해보고 싶다. 물론 이 프로그램에는 약간의 비용이 들 수도 있고 스킨십형만큼의 정성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회공헌활동보다 쉽게 출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바로 ‘전문성 나눔’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전문성을 필요한 곳에서 쓸 수 있도록 나누자는 것이다. 전문성 나눔이라고 해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아니다. 의술이라는 전문성을 가진 의사들이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낙도나 지방에서 의료활동을 벌이기도 하고 변호사들이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료변론을 하기도 한다. 대학생들이 야학이나 공부방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전문성 나눔일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금강기획의 경우 올해 두 가지 전문성 나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처음 착수한 작업은 ‘무료광고’ 제작이었다. 광고가 필요하지만 비용을 들여 광고활동을 하기 어려웠던 ‘아름다운 재단’의 광고를 기획해 연중 캠페인으로 진행했다. 아름다운 재단은 ‘1% 나눔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는데 우리 회사는 이 재단의 1% 캠페인을 알리는 광고를 기획하고 제작함으로써 결국 광고 크리에이티브 1%를 기부한 것이다. ‘기부’라고 하면 왠지 큰 돈이 필요할 것 같고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온 필자 자신이나 바쁜 업무 가운데서도 광고 제작에 직접 참여했던 스태프들도 기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필요한 곳에 기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단히 만족해 했음은 물론이다 두번째는 해외광고 운영 및 매체 집행 전략 무료 컨설팅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해외시장에서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와는 달리 처음 해외시장에 진출한 중소기업들이 현지 매체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이를 악용한 현지 브로커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사례를 보게 된 실무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지난 20여년간 회사가 해외지사와 네트워크를 통해 축적한 관련 노하우와 데이터베이스를 꼭 필요한 기업들에 제공해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국내 경제회복에 자극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아직 준비 단계지만 이 프로그램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관심은 매우 높아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전문성 나눔은 내가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하는 활동이다. 나의 전문성은 확장해서 생각하면 내가 속한 사회의 전문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전문성 역시 마찬가지다. 광고회사라면 광고에 관한 전문성을 나눌 수 있을 것이고 은행이라면 금융 서비스에 관한 전문성을, 디지털 기업이라면 그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필요한 곳과 나눠보자. 분명히 내 것은 줄지 않고 얻는 것은 훨씬 많아지는 나눔이 될 것이다. 한해를 갈무리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전문성 나눔이라는 숙제 하나를 던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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