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잇따라 ‘재건축 평형 배정 무효판결’을 내리면서 전국의 재건축단지에 초비상이 걸렸다. 만약 판결이 대법원에서까지 확정된다면 재건축사업의 기본 틀이 송두리째 바뀌기 때문이다. 현재 공사 중인 단지는 예정대로 일반 분양이나 입주를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관리처분 단계의 아파트에서는 수익성 저하로 인해 재건축 자체를 포기하거나 사업이 장기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원, 소형 소유자 손 들어줘=반포 주공2단지는 당초 59㎡(18평형) 1,230가구와 82㎡(25평형) 490가구를 82~208㎡(25~63평형) 2,767가구로 재건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새로 도입된 재건축 규제와 용적률 등이 적용되면서 규모가 2,444가구로 줄었다. 소형과 대형은 일부 늘었지만 중간 규모 가구가 감소하면서 59㎡ 조합원 상당수는 자신이 원하는 규모의 집을 배정받지 못했다. 이에 반발한 조합원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그들의 손을 들어준 것. 재판부는 “기존 59㎡와 82㎡ 조합원 중에 82㎡ 조합원에게만 우선권을 준 것은 조합원들 사이에 본질적인 차별이 초래된다”며 “기존 관리처분계획안이 형평성에 현저히 반하므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지난 6월 있었던 과천 주공3단지의 항소심도 이와 같은 내용으로 기존에 가장 작은 43㎡(13평형) 조합원이 가구 배정에 불만을 품으면서 비롯됐다. 법원은 두 차례 모두 형평성과 비례의 원칙을 중시하며 소수의 피해자를 보호하는 판결을 내렸다. 모든 조합원이 자유롭게 원하는 규모를 선택하고 경쟁이 있을 경우 추첨하는 방식 등을 택했다면 형평성에 문제가 없었다는 게 법원 측 판단이다. 이전까지는 재건축을 할 때 대지지분을 고려해 기존의 큰 평형 소유자에게 평형 선택 우선권을 줬다. 그렇다 보니 재건축 전에는 6~10㎡(2~3평)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재건축 후에는 가격 차가 수억원씩 발생했다. ◇반포 주공2 정상 입주도 불투명=당장 이번 판결로 반포 주공2단지는 내년 10월께 있을 후분양과 정상적인 입주(오는 2009년 7월 예정)도 불투명해졌다. 반포 주공2단지의 한 조합원은 “결국 법원이 우리쪽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본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누가 승소하든 대법원 판결까지 갈 것으로 보여 정상적인 사업 진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천 주공3단지도 내년 7월 말 입주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번 소송이 판례로 굳어질까 비슷한 조건의 단지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강남구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결국 모든 단지에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며 “조합원들이 내색은 하지 않지만 가슴을 졸이고 있다”고 걱정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현재 수도권에서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거나 이주ㆍ철거, 공사 중인 단지는 총 62개 단지, 조합원 수만 3만5,000여명에 이른다. 이 중 대다수가 반포 주공2단지, 과천 주공3단지처럼 관행대로 주택 배정을 했다. 상당수 단지에서는 기존 소형 소유자의 소송도 진행 중이다. 만약 이들 아파트가 관리처분계획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면 재건축 조건은 더욱 나빠질 수 있다. 김규정 부동산114 차장은 “재건축은 그동안 작은 문제가 발생하거나 새로운 규제가 생길 때마다 사업이 지연됐다”며 “지금의 상황이 재건축 추진을 더욱 더디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전 절차가 무효로 인정돼 임대주택 의무비율, 개발부담금의 대상이 되고 분양가상한제까지 적용 받을 경우에는 아예 사업 포기를 주장하는 조합원도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 소장은 “개포 주공 49㎡를 가진 사람이 고작 82㎡로 늘어난다면 동의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특히 중층 단지의 1대1 재건축 같은 경우에는 아예 재건축사업 자체가 중단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재건축 아파트값에도 영향=법원의 판결로 재건축 아파트값의 판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소형 배정 가능성으로 과거 인기가 떨어졌던 소형 매물을 찾는 매수세는 늘었고 가격 부담이 큰 매물은 호가가 하락 중이다. 넓은 평형의 아파트를 받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굳이 무리해서 비싼 집을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집값 격차도 좁혀지는 분위기다. 개포동 태양공인의 정지심 사장은 “소형 보유자들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매물이 일부 회수됐다”며 “매수자들도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돈을 더 들여서 큰 평형을 살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이런 판결이 쌓여가면 앞으로 재건축 투자 성향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며 “평형간 가격 격차가 줄어들고 오히려 가격이 싼 소형에 투자자가 더 몰릴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