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한창 배추를 수확하고 있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배추값이 금값이라고 하니 농민들의 주름살이 펴질까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배추밭 옆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한 어르신의 표정은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유는 뭘까? 지난해 수확하는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배추값이 폭락하며 자식처럼 길러온 배추밭을 통째로 갈아엎어야 했던 농민들은 올해 최소한 손해는 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에 수확 전 이미 중간 도매상들에게 ‘밭떼기’로 계약 했기 때문이다. 한 포기당 겨우 몇 백원 수준으로 팔았는데 시장에서 배추 한 포기가 3,000원이 넘으니 배추값이 올랐다고 기쁠 일도 없다.
얼마 전 한 가수가 오락프로에 나와 어려워진 음반 시장을 설명하며 “생산을 하는 사람이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기억 난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을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생산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인 장치’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장치까지는 아니지만 유통업체가 생산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계약 생산’이다. 산지와 유통업자가 산지의 적당한 이윤을 보장하는 수준에서 매년 농사가 시작되기 이전에 판매에 대한 사전 계약을 맺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배추값이 폭등하든 폭락하든 산지의 농민들은 적당한 이윤을 획득할 수 있게 되고 유통업계 역시 매년 합리적인 가격으로 고품질의 상품을 제공받을 수 있게 돼 안정적인 판매를 할 수 있다.
이론상으로 보면 농민과 유통업계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문제는 싼 가격만을 고집해온 유통업계들이 기득권과 높은 이윤을 포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살펴보면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가 이어질 경우, 결국에는 생산자는 물론이거니와 유통업자 모두 공멸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한 대형마트가 사전 계약제를 통해 농민의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수준의 가격으로 배추를 판매했다. 당장에야 가격이 낮아지며 동종업계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 보겠지만 생산자와 판매자가 상생의 길을 간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인식이 더욱 확대됐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