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이시진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환경기업, 베트남·라오스 등 해외시장 진출 적극 돕겠다

공기관 신뢰성에 민간 기술력 결합…파트너십 형태 추진

화학물질 관리 능력 부족한 중기 안전진단 등 지원 확대

4대강 필요한 사업이지만 동시다발적 공사 진행은 문제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민간기업이 들어와서 공사하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공기업이 같이 와서 한다면 신뢰성이 훨씬 높아지겠죠. 앞으로 우리 환경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입니다." 이시진(58·사진)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은 24일 서울시 영등포구 산림비전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국내 환경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점을 감안하면 해외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수월하게 진출할 수 있도록 공단이 중간자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이 해외진출에 사활을 거는 것은 국내 하수처리시설 등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서 관련 국내 시장이 더 이상 성장할 여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지난해 163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하수도 보급률은 91.6%로 하수관로 길이가 무려 12만3,309㎞에 이른다. 이처럼 환경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국내 환경기업들은 국내에서는 비즈니스 기회를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 이사장이 해외진출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중국과 베트남·태국·라오스 등 환경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나라가 수없이 많다. 이에 따라 세계 환경시장은 지난 2010년 8,000억달러에서 오는 2020년에는 1조2,00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아시아와 중남미·중동 등 신흥 산업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앞으로 10년간 연평균 3.2%의 높은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환경공단은 내다보고 있다.

커지는 해외 환경시장을 잡기 위해 환경공단이 선택한 전략은 공기관의 신뢰성과 네트워크에 민간기업의 기술력을 결합한 공공·민간환경파트너십(PPEP) 형태의 사업 추진이다. 중동이나 동남아·중남미 등은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아 민간의 진입이 어렵다. 공공기관이 나서서 길을 닦아야 하는 이유다.


환경공단은 2010년 이후 PPEP 사업을 통해 총 21건의 사업과제를 발굴했고 민간기업의 해외진출 지원을 통해 6,500억원의 해외수주를 이뤄냈다. 특히 지난해에만 총 7건의 사업과제를 찾아내 현재 계약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환경공단은 현재 중국과 베트남에 해외사업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현지 사무소를 개설한 데 이어 중남미 사무소도 곧 문을 열 계획이다. 이들 사무실에서는 우리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사업을 찾고 현지 사업설명회 등도 개최한다. 아울러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손잡고 해마다 약 100여명의 개도국 환경공무원들을 초청해 연수를 해줌으로써 개도국의 환경정책 수립과 집행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우리나라 환경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해서 오랫동안 쌓아온 기술을 사장시킬 수는 없다"며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 아직도 하수처리장이 없는 나라가 많은 만큼 이들 지역에서 우리 환경산업의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공단의 이 같은 노력은 이미 구체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멕시코 할리스코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폐기물 에너지화 사업은 지난 1년간 사업추진을 위한 조사를 마쳤고 코스타리카 소각장 기초사업성 검토도 이뤄지고 있다.

올해는 무엇보다 그동안 물밑에서 추진하던 미얀마와 멕시코의 폐기물·신재생에너지 플랜트 사업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이사장은 "2월 말께 미얀마에서 매립장과 소각장 등 700억원에 이르는 사업계약 체결을 위해 출장을 갈 계획"이라며 "재작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우리나라의 대기측정망과 실시간 대기질 공개 시스템에 관심이 있다며 공단을 찾은 적이 있는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업무처리가 원활하게 이뤄질 경우 2,000억원 정도 사업 수주도 가능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이사장은 "어렵게 공사를 수주하더라도 로열티로 아까운 비용이 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환경 연구개발에 관심을 두고 원천기술 개발역량을 키워나간다면 정보기술(IT)이나 건설기술 등 우리의 강점을 접목해 얼마든지 해외판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 등 환경규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 이사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환경규제는 화학물질 누출 사고와 같은 재난을 사전에 막아 국민들의 불안을 막기 위한 것이지 기업을 죽이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며 "기업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과징금만 하더라도 최대 금액을 해당 사업장 매출의 5%까지 낮추는 등 기업이 원하는 수준으로 맞췄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학물질 누출과 관련해 대기업보다는 작은 규모의 기업들이 숫자도 많고 그만큼 사고 가능성도 크다"며 "현재 1,000곳의 영세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해 두 번씩 무료 컨설팅이나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있는데 앞으로 지원을 더 늘려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와 관련해 이 이사장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천연가스 버스 확대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지만 중국에서 날아오는 것은 당장 막을 방법이 없다"며 "하반기부터는 전국 측정망을 활용해 모바일 앱을 통해 동네별 예보를 함으로써 국민들의 불편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지구적으로 일어나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이 이사장은 "현재 도시 내 빗물을 하천까지 흘려보내는 하수관로는 대부분 5~10년에 한 번 정도 내리는 비에 대응하도록 돼 있어 최근의 국지성 집중호우에 대비하기에는 용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단에서는 기존의 하수관거를 키우는 대신 '도심 지하의 물그릇'을 크게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다"며 "현재 6개 지역에서 벌이고 있는 시범사업에서 효과를 본다면 저류지 확충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경공단은 2015년까지 여름철 집중호우 때마다 침수피해를 입고 있는 부천시와 천안시·서천군·보성군·안동시·김해시 등 6개 시범지역을 대상으로 2,700억원을 투입해 빗물 저류지를 만들고 있다.

환경공단이 앞으로 집중해야 할 일에 대한 질문에 이 이사장은 '환경복지 실현'을 꼽았다. 이제는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환경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환경복지는 누구나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헌법의 '환경권'에 근거한 정책"이라며 "환경복지 실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수혜자인 국민이 체감으로 느끼는 서비스의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환경공단은 기존에 실시해온 라돈이나 석면 등 발암물질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 대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이사장은 "올해도 라돈 무료 측정과 저감 컨설팅 대상을 1,500가구로 확대하고 석면피해구제제도 대상 질병에 비만성 흉막비후라는 질환을 추가해 지원범위를 넓혔다"며 "빛 공해 방지나 악취 저감, 공공환경시설 실내 공기질 관리, 어린이 활동공간 안전진단 등 국민의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환경관리에 대해 서비스를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30년 넘게 환경공학 전문가로 살아온 이 이사장에게 '환경'이라는 단어만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말이 있을까. 그가 유학을 시작한 1970년대 후반에는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 환경공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환경이라고 하면 자연보전이나 나무 심기가 전부인 시대였다.

"먹고살기 힘든 때에 누가 환경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토목은 있을 수가 없죠. 건설사들은 상하수도시설과 폐기물 플랜트를 짓고 하천정비를 할 때는 수질관리가, 철도와 공항을 만들려면 생활소음이나 진동관리가 필수적입니다. 물론 집도 더 짓고 도로도 더 만들어야 하지만 과거처럼 함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거죠."


그런 점에서 이 이사장은 4대강 사업에 대해 아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물 환경 전문가인 이 이사장은 4대강 사업 추진 당시 그와 같은 대규모 사업은 일단 일부 구간에서 시범사업을 해보고 문제점을 보완한 뒤 추진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이 이사장은 "한강도 해마다 강바닥에 쌓이는 흙을 퍼내고 있기 때문에 준설은 필요한 일"이라며 "문제는 강바닥에도 나름의 생태계가 형성돼 있는데 이런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 없이 모든 강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업을 진행한 것은 잘못된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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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is …

△1956년 대구 △1976년 영남대 토목공학과 △1981년 미국 맨해튼대 환경공학석사 △1981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환경공학박사 △1989~2013년 경기대 환경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1993~2001년 환경관리공단 자문위 위원 △2001~2004년 환경부 상하수도 민영화 자문위원장 △2003~2006년 환경관리공단 신기술평가위원 △2007~2011년 대한환경공학회 부회장 △2013년 5월~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내 자식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비리 있을 수 없어"

환경공단 '청렴성공 프로젝트' 추진

1년새 미흡→우수 3등급 수직상승

"저는 백 마디 화려한 수식어보다 늘 내 자식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라고 이야기합니다. 뇌물과 향응을 받는 아버지·어머니보다는 꼭 높은 위치가 아니어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자기 일을 하는 부모가 더 자랑스럽지 않겠습니까."

한국환경공단은 2012년만 하더라도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5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매우 미흡'을 받는 불명예를 안았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우수(2등급)'로 3등급 수직 상승하며 우수 청렴기관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 같은 변화의 이면에는 이시진 환경공단 이사장의 노력이 숨어 있다. 이 이사장이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청렴서약을 받는 것이었다. 청렴서약의 첫 번째 선수는 이 이사장 자신이었다. 이 이사장은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자는 마음가짐으로 먼저 청렴서약에 서명을 했다"고 말했다.

물론 서명에만 기댈 수는 없었다. 청렴도를 올리기 위해 조직운영 방식을 전면 개편했다. 단 한 번의 비위행위만으로도 해임 이상의 중징계가 가능하도록 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와 부패행위자의 인사상 징계를 강화한 '직급강등제'가 대표적이다. 아울러 부패행위 직원의 상급자까지도 연대책임을 지도록 한 '상급자감독책임제'가 도입됐다.

환경공단은 국민권익위와 공동으로 '청렴성공 프로젝트'를 추진해 조직의 청렴상태를 진단하고 내부적으로도 청렴과제를 공모하는 등 비위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안팎으로 모았다.

그러나 시스템도 결국은 사람의 몫이라는 것이 이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솔선해서 청렴을 실천한다는 의미로 집무실을 언제나 개방해 외부 손님들을 만날 때 직원을 배석시킨 자리에서 대화내용을 기록하게 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특히 기업 관계자들은 업무시간에 집무실에서 만날 뿐 저녁에 따로 만나지 않는다.

그는 "밤에 따로 만나면 어려운 이야기도 털어놓을 수 있다고들 하는데 반드시 밤에 만나서 해야 하는 이야기는 없다"며 "할 말이 있으면 근무시간에 공단으로 방문해달라고 요청하고 외부인 접견시에도 반드시 업무 관련 직원들을 배석시켜 불필요한 오해와 부조리의 소지를 원천 방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환경공단이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월급은 적지만 밥 굶는 정도는 아니니 떳떳해야 하지 않느냐. 이런 마음으로 모두가 청렴도 높이기에 동참하다 보니 좋은 성과가 있지 않았나 싶다"면서 "청렴도 최우수 기관이 되려면 아직도 노력이 더 필요하다"며 웃었다.

대담=오철수 사회부장(부국장대우) csoh@sed.co.kr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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