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GM과 '좋은' 기업지배구조

2006년 7월7일은 세계 자동차업계 역사에 길이 남는 날이 될 것이다. 제너럴모터스(GM) 이사회가 프랑스의 르노그룹에 주식의 20%를 팔고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는 협상을 시작할 것을 결정한 날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동차회사간의 전략적 제휴는 항상 있어왔다. GM 자신도 몇 년 전 이탈리아의 피아트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가 최근 해소한 바 있다. 르노도 지난 98년 일본 2위 자동차회사 닛산의 주식 35.5%를 취득하면서 전략적 제휴를 시작, 현재는 르노가 닛산 주식의 44.4%를 소유하고 닛산이 르노 주식의 15%를 소유하는 교차소유를 바탕으로 르노-닛산그룹을 이루고 있다. 이번 협상이 성사된다면 세계 자동차업계 사상 유례가 없는, 유럽-아시아-북미 3대륙을 잇는 연대가 형성된다. 그리고 일부에서 바라는 대로 현재 르노와 닛산의 최고경영직을 동시에 맡고 있는 카를로스 곤 회장이 GM의 최고경영자가 될 경우 레바논계 브라질 출신의 프랑스인이 미국의 최대, 프랑스의 2위(1위는 푸조), 일본의 2위 자동차기업을 동시에 지휘하는 획기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세계 최대(생산대수 기준) 자동차회사인 GM이 세계 10위 르노에 구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르노-닛산그룹은 르노와 닛산(7위)을 합치면 GM, 도요다, 포드에 이어 세계 4위의 자동차 그룹이지만, 98년 미국의 3위 업체였던 크라이슬러가 독일의 다이믈러-벤츠그룹에 합병된 지 10년도 안돼 자동차산업 초기부터 부동의 세계 1위를 유지했던 GM마저 외국 회사에 반쯤 넘어간다는 것은 미국의 자존심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닛산을 제치고 세계 6위까지 올랐던 현대자동차가 과연 이런 거대한 지각변동 속에서 전략적 제휴 없이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관심거리이지만 이 사건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 문제에도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현재 ‘좋은’ 기업지배구조로 알려져 있는 것은 소유가 분산돼 있고, 이사회에 사외이사가 많아 노조나 창업자 가족 등 ‘내부자’들을 엄격하게 감시하는 구조이다. 또 전기회사, 심지어는 우체국까지 민영화하는 세상에 국영기업은 말도 안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 10대 자동차업체 중 좋은 지배구조를 가진 곳은 GM뿐이다. GM의 경우 소유가 분산돼 있고 이사도 모두 사외이사이다. 그러나 미국 기업이라고 다 GM과 같은 구조를 가진 것은 아니다. 자동차업계만 봐도 미국의 포드(세계 3위)는 우리나라의 현대(6위)와 프랑스의 푸조(8위)와 함께 창업자 가족이 통제하는 회사이다. 일본의 도요타(2위)나 혼다(9위)는 소유는 분산돼 있지만 사외이사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4위와 5위인 폭스바겐과 다이믈러-벤츠는 독일 고유의 공동결정제도로 인해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 등 두 개의 이사회를 두고 있는데 감독이사회의 절반은 노조가 추천한 이사들이다. 이에 더해 폭스바겐의 경우는 본사가 위치하고 있는 니더작센(Niedersachsen) 주정부가 20%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10대 자동차회사 중 기업지배구조상 가장 특이한 곳은 르노이다. 르노는 원래 가족소유였다가 2차대전 직후 소유주가 나치에 부역을 한 죄로 국유화된 기업이다. 르노는 96년 정부 지분이 47%로 낮아지면서 형식상으로는 민영화됐으나 당시 3.7%는 종업원, 11%는 정부관련 금융기관이 소유함으로써 사실상 정부가 과반수의 주를 통제했다. 이후 정부 지분이 계속 낮아져 현재는 15.7%가 됐지만 아직도 정부가 최대주주인데다 15%는 르노의 지배를 받는 닛산이, 3.6%는 르노 종업원들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반(半)국영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10대 자동차회사 가운데 좋은 지배구조를 가진 게 GM뿐이라는 것, 그러한 GM이 현재 제일 경영이 어렵다는 것, 그리고 GM이 ‘백기사’로 불러들이려 하는 르노가 국영기업으로 성장했고 아직도 반국영기업이라는 점 등은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웅변한다. 특히 현 정부와 같이 무조건 미국 제도, 그것도 진짜 미국보다는 교과서에 나오는 이상화된 미국의 제도를 모방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에게는 곰곰이 생각해볼 거리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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