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26일 국무회의 발언은 국회의 헌법상 권능회복 촉구와 헌법재판소에 대한 강한 불만표출로 압축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다 복잡한 정치적 속내가 감춰져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선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겠지만 여론에 대한 지속적인 탐색을 통해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화두를 언제든지 다시 꺼내 들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결정과 관련, “국회의 헌법상 권능이 손상됐고 정치 지도자와 정치권 전체가 신뢰의 타격을 입었다”며 “국회는 권능회복을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국회 권능손상과 정치권 신뢰 타격의 이유로 신행정수도특별법이 국회에서 여야간 합의로 통과된 점, 지난 총선에서 여야 모두가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제시한 점 등을 제시했다. 한나라당도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정치 지도자의 신뢰문제를 거론한 것은 노 대통령이 올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신행정수도 건설이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사실상 좌절된 데 대한 책임을 수도이전 반대세력에 돌리려는 것으로 비춰진다.
이와 함께 언론관계법 등 ‘4대 개혁법안’의 국회 처리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 의석분포상 여권에 우호적인 국회가 합당한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대감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헌재 결정으로 정국 주도권을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만한 여당 등 지지층을 우선적으로 달랠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신행정수도 이전이라는 명분을 어떤 형태로든 보존해나가겠다는 복합적인 전략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한 여권의 반응도 그 같은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안병엽 우리당 제4정조위원장은 “국회가 정치적 협상을 제대로 하지 않아 헌재까지 불러들였다는 대통령의 지적에 공감한다”며 “여야가 힘을 합쳐 손상된 입법권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영길 의원 역시 “관습헌법을 동원한 헌재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대통령의 지적은 정확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법적 안정성이 깨지고 헌재에도 정치적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당 일각에서는 더 나아가 대법관 위주로 구성된 헌재 구성방식을 전면 재편하고 재판관을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사실상 ‘헌재 규제법안’을 제출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반응은 싸늘하다.
전여옥 대변인은 “입법권 훼손은 노 대통령 본인이 제공한 것”이라면서 청와대의 책임 떠넘기기를 비판했다. 전 대변인은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참지 못하고 헌재 결정에 거스르는 발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여론”이라고 꼬집었다.
최경환 의원도 “자신에게 유리한지 아닌지를 따져 수용한다면 나라는 무법천지가 될 수밖에 없다”며 “과거 유신정권이 망한 것도 독재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다 망해버린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