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전문변호사 전성시대] <9> 국제중재

갈수록 느는 다국적 분쟁 소송없이 해결점 찾아

김갑유 변호사, ▲1962년 대구 ▲능인고, 서울대 법대 ▲사법시험 26회(연수원 17기) ▲1988년 한미합동법률사무소 ▲1994년 미국 하버드 로스쿨, 뉴욕주 변호사 ▲1996년 법무법인 태평양 ▲2007년 런던국제중재재판소·ICC 중재재판소 상임위원 ▲2009년 국제투자분쟁센터·미국중재협회 상임위원

김범수 변호사, ▲1963년 서울 ▲경기고, 서울대 법대 ▲사법시험 27회(연수원 17기) ▲1988년 부산지법 판사 ▲1997년 미국 플로리다 로스쿨 ▲1999년 미국 휴스턴 로스쿨, 뉴욕주 변호사 ▲2000년 법무법인 세종 ▲2009년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2011년 대한중재인협회부회장

윤병철 변호사, ▲1962년 대구 ▲능인고, 서울대 법대 ▲1984년사법시험 26회(연수원 16기) ▲1990년 서울지법판사 ▲1992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1995년 미국 하버드 로스쿨, 뉴욕주 변호사 ▲2010년 미국 중재센터 중립중재인 ▲2011년 중국국제상회 중재인 ▲2013년 ICC중재재판소 상임위원

임성우 변호사, ▲1964년 포항 ▲경북고, 서울대 법대 ▲사법시험 28회(연수원 18기) ▲1989년 법무법인 광장 ▲1995년 미국 코넬대 로스쿨, 뉴욕주 변호사 ▲2009~2011년 아시아태평양지역 중재그룹 사무총장 ▲2011년 대한중재인협회 부회장 ▲2013년 싱가포르 국제중재법원 초대 상임위원

● 김갑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IMF때 잃었던 현대오일뱅크 경영권 환수

● 김범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한국-EU 조선산업 WTO 보조금 분쟁 승리


● 윤병철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용인경전철 개통 지연 손실보전금 받아내

● 임성우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韓·獨기업 다툰 서울중재센터 1호사건 담당


중재(仲裁)는 소송 대신 이용되는 분쟁 해결 수단 중 하나다. 변론과 증인심문 등의 절차는 소송과 비슷하지만 3심이 아닌 단심제로 운영된다. 때문에 소송과 달리 빠른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중재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기에 분쟁이 발생했다는 소문만으로 주가가 출렁이곤 하는 기업들은 소송보다 중재를 선호한다. 특히 국제중재는 당사자들이 선정한 제3자 중재인을 통해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국적이 다른 기업들의 분쟁이 날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제중재가 가장 유효한 분쟁 해결 수단으로 각광받는 이유다.

국제중재 분야는 런던국제중재재판소(LCIA)를 100년 이상 운영해온 영국과 가장 많은 사건을 다루는 국제상업회의소(ICC) 부설 국제중재재판소 사무국이 있는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돼 왔다. 우리나라는 1998년 외환위기(IMF)로 외국 자본들이 들어온 시기와 맞물려 조금씩 수요가 창출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햇수로는 15년 남짓 됐다.

그렇지만 세계 중재분야에서 한국과 한국 변호사들의 위상은 결코 낮지 않다.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일류 기업 중 아시아 기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국제중재의 조류(潮流)가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한 까닭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중재 1세대' 변호사들이 전세계의 이목을 끈 굵직한 중재사건들을 승소로 이끌며 실력을 과시한 덕도 크다.

용인경전철 개통 지연과 관련된 국제중재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제중재라는 생소한 단어를 우리 국민들 머릿속에 각인시킨 사건으로도 꼽힌다.

1조원 가까운 민간자본이 투자된 용인경전철은 2010년 완공 이후로도 긴 시간 개통되지 못했다. 수요 예측에 실패한 용인시가 계약상 물어줘야 할 손실보전금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 소음 방지대책 미비 등을 빌미로 경전철의 준공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통 지연으로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된 민간사업자는 2011년 2월 ICC 국제중재재판소의 문을 두드렸고 ICC 중재재판소는 두 차례에 걸쳐 용인시가 사업자에 손해액인 7,700억원을 전부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시행사를 대리해 1년6개월 만에 사건을 승소로 이끈 윤병철 김앤장법률사무소(51ㆍ사법연수원 16기) 변호사는 "용인시 스스로가 선정한 프랑스 국적 중재인조차 지방자치단체가 세금을 걷어 할 사업을 민간에 맡겨놓고 뒤늦게 약속을 못 지키겠다고 하는 상황에 일침을 놓았다"며 "한국 로펌의 실력을 국제사회에 보여준 것은 물론 지자체의 무리한 민자사업 추진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었다"고 회고했다. 해당 사건은 법률전문지'아메리칸 로이어 매거진'이 선정한 2011년~2013년 최대의 승소 사건으로 선정됐다.

윤 변호사는 대한생명 민영화를 둘러싼 한화그룹과 예금보험공사의 분쟁에서 한화를 대리해 2년 만에 전부 승소판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예보가 "계약에 문제가 있다"며 한화와의 계약을 취소함에 따라 2조원 규모의 대한생명을 다시 정부에 돌려줘야 하느냐에 대한 사건으로 당시 한국에서 벌어진 가장 큰 규모의 중재사건이었다.

김갑유(51ㆍ연수원 17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국내 국제중재 분야의 자타공인 선구자로 꼽힌다. 외환위기로 1999년 외국기업에 넘어갔던 현대오일뱅크 경영권을 2009년 ICC 중재재판소의 판정에 따라 10여년 만에 되찾아 온 사건은 그의 이름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건이다. 김 변호사가 이끈 태평양 국제중재팀은 당시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70%를 보유하고 있던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가 주주간 계약을 중대하게 위반했다는 점을 입증해 주식의 공정가격에서 25% 할인한 금액인 1주당 1만5,000원에 IPIC 보유 지분 전부를 현대중공업에 매도하라는 판정을 이끌어냈다.

김 변호사는 "해당 사건은 금액은 물론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케이스로 그 해 글로벌 중재 이슈를 다루는 유수 잡지들에게 '올해의 중재상'을 받기도 했다"며 "또 고등학교 시절 고 정주영 회장이 설립한 아산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는데 보답을 한 것 같아 지금도 현대오일뱅크 마크를 보면 뿌듯할 정도"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진행 중인 론스타와 한국 정부간의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에서 정부를 대리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지난해 한-벨기에 투자자 보장 협정을 우리 정부가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중재를 신청했다. 우리나라의 첫 ISD 사례다. 주요 내용은 외환은행 지분 매각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매각 승인을 거부하고 지연해 5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입혔으니 이를 배상하라는 것이다.


김 변호사의 반대편에서 서 론스타를 대리하는 이는 김범수(50ㆍ연수원 17기)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다. 사건 수임이 부담스럽지는 않냐는 질문에 김범수 변호사는 "개인적으로도 갈등을 많이 했지만 이 사건은 어느 쪽을 대리하든 간에 궁극적으로는 국내 기업과 정부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며 "대규모 국제투자분쟁을 원활하게 마무리 짓는 경험을 통해 해외 투자에 나선 기업들은 물론 추후 정부가 비슷한 분쟁을 겪을 때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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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는 이 같은 대규모 국제분쟁 사건에서 이미 한 차례 정부를 대리한 경험도 있다.

김범수 변호사는 유럽연합(EU)이 '한국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조선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건에 대해 정부를 대리해 수년간의 공방을 거친 끝에 2005년 승소했다. 그는 "한국 변호사 최초로 WTO 법정에서 섰고 성공적으로 방어해 국내 조선소가 물어야 하는 6조원에 가까운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며 "법률가들이 경험할 수 있는 여러 분쟁 가운데 가장 고양된 수준의 분쟁이었고 개인적으로는 물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도 값진 경험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변호사들이 사건 수임 외에 최근 가장 관심을 쏟는 것은 서울을 아시아권 최고의 국제중재 허브로 키우는 일이다. 김갑유 변호사는 "분쟁에서도 시장을 주도할 수 있어야 그 산업의 선구자라 말할 수 있다"며 "서울이 국제중재 허브를 넘어 아시아 분쟁 해결의 중심지가 된다면 관련 산업 역시 큰 동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은 조금씩 성과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최첨단 중재심리(hearing) 시설을 갖춘 서울국제중재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점은 한국 국제중재 분야의 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서울국제중재센터의 제1호 중재사건은 임성우(47ㆍ연수원 18기) 변호사가 이끄는 법무법인 광장 국제중재팀이 담당했다. 독일과 한국 기업간의 분쟁을 다루는 ICC 국제중재사건으로 임 변호사가 한국 기업을 단독으로 대리했고 상대는 베이커앤맥킨지(Baker & Mckenzie)에서 맡았다.

판정을 내릴 중재인단의 면면도 화려했다. 해외중재 전문지 아비트레이션리뷰(GAR)에서 '2011년 올해의 중재인'으로 선정한 벨기에 출신의 버나드 하노쇼어가 의장중재인을 맡고 싱가포르국제중재원(SIAC) 국제중재법원 의장인 마이클 프라이스, 독일 출신 스테판 뤼첼이 중재인으로 참여했다.

성공리에 심리를 끝마친 임 변호사는"세계적 명성을 떨치는 중재 전문가들이 서울센터의 편리하고 효율적인 시설에 크게 만족했다"며 "뜻 깊은 1호 사건에 광장이 선택됐다는 사실도 역시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최근 세계 중재전문가들이 주목한 우리 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론스타 자회사인 LSF-KDIC투자회사가 예금보험공사의 자회사 KR&C를 상대로 ICC 중재재판소에 중재를 신청해 유리한 판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임 변호사는 주주 간 중재조항에 대한 합의가 론스타와 예금보험공사 사이에만 있었고 LSF-KDIC투자회사와 KR&C 사이에는 없었다는 점을 입증해 예보 손실을 378억원이나 줄여줬다. 임 변호사는 "중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최근 각국의 중재재판소가 관할을 무리하게 확대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최신 국제중재이론을 적용해 관할 이외의 중재판정은 유의미하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낸 선도적인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국내 기업들이 국제분쟁에 노출되는 일이 더 잦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윤 변호사는 "아직 한국 기업이 서구의 유명 중재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중재란 결국 중재인들에게 판정 받는 것이고 이들에게 한국의 뛰어난 문화와 능력에 대해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초기 계약 단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앞으로 분쟁의 가능성이나 리스크 등을 꼼꼼히 따져 계약서를 잘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분쟁의 대부분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며 "경험이 없다면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는 편이 좋지만 기업 내부적으로도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범수 변호사는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사회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가진 기업은 중재인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으므로 눈앞의 이익을 취하기 보다 궁극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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