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UPGRADE 한국의 노사문화] 2-5.대화로 共生의 길 찾는다 ① 일본-2

“호봉제는 유지돼야 한다.”(노동계) “임금인상만을 추진하는 춘투(春鬪)는 끝났다.”(경영계) 일본 최대 노조단체인 렌고(連合)는 지난해 11월19일, “임금인상은 어렵겠지만, 호봉제는 유지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經團連)은 12월18일, 춘투와 관련한 `경영노동 정책위원회 보고`에서 “앞으로 임금인상 교섭에서 임금인하도 고려한다”는 교섭지침을 만들었다. 이 지침에서 재계는 춘투가 임금인상만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노사가 회사의 경영상태 및 사회보장제도 등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년 봄 열리는 춘투를 앞두고 일본 경영자 단체가 임금인하를 주장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임금인상을 전제로 한 `춘투`는 사실상 끝났다는 것을 공식선언한 셈이다. 이에 대해 렌고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일본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결정”이라며 “일본 경제ㆍ산업의 재도약이라는 관점이 완전히 결여된 구상”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개별 기업 노조의 분위기는 렌고의 입장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경제위기와 기업실적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인상을 주장하기가 어렵다는 인식이다. 야츠하시 요코가와전기 노조위원장은 “춘투는 임금을 올려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지만, 지금은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데다 물가도 내리고(디플레이션)있어 임금을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에 참석하고는 있지만, (춘투가) 본래의 의미를 잃었다”고 말했다. 일본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춘투`의 의미가 크게 퇴색하고 있다는 것. 올해 두산중공업 문제 등으로 어느 해 보다 `춘투바람`이 거셀 것으로 보이는 우리나라와는 크게 대비가 된다. 춘투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기본급 인상률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상당수의 기업들이 기본급 동결을 선언하고 있다. 올해는 임금동결 대열에 가세하는 기업들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 후생노동성(한국의 노동부)의 노사관계담당참사관실 후루가와 쇼지로(古川正二郞) 참사보좌관도 “올해도 노동계 춘투가 있겠지만, 일본경제와 기업 경영실적이 더 나빠지고 있어 임금동결을 선언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일본 최고 기업인 도요타 노조는 올 춘투에서 정기승급분을 제외한 임금인상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노조는 대신 생산성 향상을 위한 성과급을 1인당 6만엔을 요구할 방침이다. 도요타 뿐만 아니라 NTT, 대형 전기업체, 조선중기업체 노조들도 올해 임금인상을 포기했다.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 주요기업들의 춘투 임금인상률은 지난 96년 2.86%, 98년 2.66%, 2000년 2.06%, 2002년 1.59%로 매년 떨어지고 있다. 노동계가 더 이상 임금인상이나 복지향상문제에 매달릴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불황이 1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데다 앞으로의 경기도 불투명해 대규모 해고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는데, 임금인상이나 복지향상을 요구하는 것은 `배부른 흥정`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1955년 이후 50년 가까이 일본의 노동운동을 상징하던 춘투가 일본경제의 침몰과 함께 유명무실한 행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노동계의 춘투 `동면(冬眠)`은 일본경제에 `봄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종신고용제, 독인가 약인가]"경쟁력 약화 요인" 포기가 대세 일본 노사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종신고용제다. 기업은 직원을 한번 채용하면 특별한 문제가 있지 않는 한 해고하지 않는다. 정년까지 근로를 보장하는 것. 이는 종업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으로 연결돼 한 때 일본기업의 성공모델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종신고용제가 일본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으며, 종신고용제를 포기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종업원 5,000명 이상의 기업 가운데 종신고용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기업은 지난 93년 조사대상의 51.6%에서 96년 29.3%로 급격히 떨어졌으며, 99년에는 22.2%로 줄어들었다. 이후 공식적인 조사는 없었지만, 종신고용제 유지의사를 갖고 있는 기업이 더욱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것이 후생성 관계자의 말이다. 물론 대기업들 가운데는 아직도 종신고용제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이 많다. 종신고용제가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장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와이 도요타 자동차 인사부장은 “도요타에서 해고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정년까지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종신고용`이라기 보다 `장기고용`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며 “장기고용이 보장됨에 따라 종업원들이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이것이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야츠하시 요코가와전기 노조위원장도 “제조업에서는 고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요코가와전기도 종신고용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역협회 도쿄지부 이중호 과장은 이 같이 종신고용제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기업들에 대해 “일본기업들 대부분이 해외에 생산기지를 갖고 있어, 일본내 생산비중이 높지 않다”며 “해외에서 벌어 경쟁력없는 일본내 기업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종신고용제 포기가 대세이기는 하지만, 상당수 업체가 종신고용제의 장점과 기업 안팎의 사정으로 전직원을 끌어안고 가고 있다. 따라서 종신고용제가 기업에게 `독(毒)`이 될 지 `약(藥)`이 될 지는 앞으로 일본경제의 향방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日노조 어떻게 운영되나]상근 노조원 한국의 절반 일본 기업의 노조는 우리 기업들의 노조와는 성격과 구성면에서 크게 다르다. 우선 상근노조원의 숫자가 다르다. 국내 대표 기업인 현대자동차는 임직원 5만명에 노조원 3만8,000명, 상근노조원 90명이다. 그러나 일본 대표 기업인 도요타자동차는 임직원 6만6,000명에 노조원 5만9,000명, 상근노조원 70명(상급단체 파견 20명 포함)이다. 현업에서 일을 하지 않는 상근노조원이 현대차는 노조원 422명당 한명, 도요타는 843명당 한명 꼴이다. 정확하게 2배 차이가 난다. 즉, 현대차 상근노조원이 도요타의 2배나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근 노조원이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은 우리기업들과 달리 일본에서는 대부분 상근노조원의 임금을 노조비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카와이 가즈유키 도요타자동차 인사부장은 “도요타 자동차의 상근 노조원들의 임금은 전액 노조비에서 지급되며, 회사차원에서는 한푼도 주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노조위원장에 대한 대우도 다르다. 국내 대기업에서는 노조위원장에게 차량을 제공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지만, 일본 기업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야츠하시 요코가와전기 노조위원장은 “일본 기업의 노조위원장은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노동귀족이 되면 현장복귀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의 어느 기업도 회사에서 노조위원장에게 차량을 제공하는 사례는 없다”며 “부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조의 경영참여에 대한 인식도 차이가 크다. 현대차의 경우 신규사업을 하거나 기존 공장을 폐쇄할 때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다. 뒤집어 말하면, 노조가 동의하지 않으면 회사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의미다. 도요타에서는 노조의 경영참여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요코가와전기도 마찬가지다. 카와이 도요타 부장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때는 물론 공장을 없앨 때도 노조의 동의는 필요없다”며 “노사가 상호신뢰와 책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모든 사안에 대해 결론이 나올 때 까지 대화를 한다”고 말했다. 야츠하시 요코가와 노조위원장도 “경영에 대해 의견제시는 하지만, 경영참여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 기업들은 대부분 종신고용제를 채택, 안정적인 직장을 보장해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의 노사문제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해고자 복직문제가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특별취재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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