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자아 분열·대립 말하는 서가 속 두시선

중국 차세대 작가 관용 개인전

회색(Gray)

허름한 아파트 한 가운데 놓인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의 주변에는 지저분하게 습작한 종이와 페인트 통, 붓, 물감칠 등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마치 평생 청소를 한 번도 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준다. 현대 영국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의 작업실을 촬영한 사진이다.

그리고 수십 년 후 그의 작업실 사진은 한 중국인 청년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베이컨의 작업실 사진을 통해 위대한 화가와 그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고통의 시간과 작업의 잉여물을 목격한다. 중국 화단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는 관용(管勇ㆍ38)이 그 주인공으로, 내달 21일까지 삼성동 인터알리아 아트스페이스에서 그의 첫 개인전 '아이러니-복제된 형상구조 속 전복의 미학'이 국내 처음으로 개최된다. 작가는 물감 퇴적물과 베이컨의 작업실, 그리고 책을 소재로 현대 사회의 자아 분열을 표현한다. 그는 여기저기 떠다니는 물감 퇴적물과 팔레트에 말라 붙은 물감의 흔적을 그의 작품에 그려 넣는다. 물감 퇴적물을 아무 쓸모 없는, 영양분을 모두 소비하고 배출한 쓰레기가 아니라 모든 에너지의 원동력으로 삼은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회색(Gray)'은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의 대립 구조에 천작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처음 이 작품을 보면 지극히 평면적인 서가에 두 인물이 끼워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들여다 보면 하나의 서가처럼 보였던 것이 상하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화면의 왼편에 위치한 남성의 시선은 오른 편의 남성에게 향하고, 시선을 받고 있는 남성은 작품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향한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은 작품 '회색'으로 향하며 자아와 타자의 분열과 대립,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얽혀 있는 필연적인 관계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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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작품인 '나르시스트(Narcissist)'에서 서재는 마치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화면을 떠다니고 그 사이로 안정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의 표정은 매우 상기되고 시선은 몹시 불안정하다. 작가가 '회색'을 통해 보여준 1차원적인 분열이 '나르시스트'에 와서는 다차원적인 시공간의 교차를 통해 보다 위태로운 각도에서 보여진다. '회색' 작품처럼 누가 누군가를 보고 있는 듯한 시선에 의한 감시나 견제를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여유는 이 곳에선 찾아볼 수 없다. '나르시스트'의 작중 인물은 마치 서재 모양의 쾌속열차가 엄청난 속도로 스쳐 지나가 버려서 정작 작품 속 주인공은 얼이 빠진 멍한 상태에 빠진 듯한 인상을 준다. 이밖에 '아이스크림(ICE CREAM)', '서가 속의 미스터 X(Mr.X in the study)', '빅 아티스트(Big Artist)' 등 총 30점의 회화와 1점의 조각이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다.

관용은 "중국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는 세계의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며 "예술 세계와 현실 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으며 내 경우엔 작품이 예술과 현실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5년 중국 산둥성 허쩌시에서 태어난 관용은 톈진미술학원에서 유화과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 베이징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특히 홍콩 재계 순위 30위인 파크뷰 그린 그룹의 조지 웡 회장이 관용의 후견인이자 작품의 컬렉터로 잘 알려져 있다. (02) 3479~0114.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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