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자위대 원전 투입기준등 '매뉴얼 함정'…상황 악화시켰다

[日本 대지진] 日의 4가지 오판<br>① "도쿄전력서 먼저 지원요청 해야"→ 냉각작업 지연<br>② 정유시설 수도권 집중→ 재해지역 석유 공급 안돼<br>③ 일괄적 제한 송전→ 의료·교통기관까지 혼란 가중<br>④ 정부 상명하달식 위기관리→ 실행할시점에 회의만

"후쿠시마(福島) 원전사태는 60%가 인재(人災)입니다." 일본의 한 정부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같이 말했다. 지진 재해에 관한 한 철저한 '매뉴얼'을 수립하고 위기대응에 만전을 기해왔던 일본 사회가 매뉴얼의 '함정'에 빠졌다. 예상범위를 넘어서는 초유의 재난에 직면해서도 틀에 박힌 기존 매뉴얼에 따르느라 상황을 악화시키는 '인재'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원전사태만이 아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식료품과 의약품 등 구호물품이 운송차량의 휘발유 부족으로 이재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해 수십명이 피난소에서 목숨을 잃고 전력난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정전'이 극심한 혼란을 야기하는 등 이번 사태는 '매뉴얼 사회' 일본의 위기관리 체계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일 지난 11일의 대지진과 쓰나미가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후의 대응에서 문제점이 속출하며 혼란이 가중된 것은 ▦원전 ▦휘발유 ▦전력공급 ▦정치 등 4가지 부문에서의 '오판' 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 지진 이후 일본에 가장 큰 문제를 초래한 원전과 휘발유 부족 사태는 '매뉴얼'의 함정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WSJ는 "일본 자위대가 원전에서 네 차례나 폭발이 발생한 뒤인 16일에서야 원전냉각 작업에 투입된 것은 도쿄전력으로부터 지원 요청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요청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는 방위성 대변인의 설명은 매뉴얼에 얽매인 일본 사회의 위기대응 능력이 매뉴얼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보여준다. '고효율'을 내세운 그간의 '비용절감' 매뉴얼도 위기시에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WSJ는 19일(현지시간) 도쿄전력이 원전폭발 사태 이후 냉각을 위해 바닷물을 투입하기까지 시간을 끈 것은 바닷물을 투하해 원전설비를 아예 못 쓰게 되는 사태를 염려해서였다는 주장을 실었다. WSJ는 한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도쿄전력이 10엔짜리 동전을 주우려다가 100엔짜리 동전을 떨어뜨린 셈"이라고 꼬집었다. 수십명 이재민의 목숨을 앗아간 구호물품 부족사태 역시 아끼기에 치중하는 일본 사회 매뉴얼에서 초래한 부분이 없지 않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일본의 석유회사들이 지난 10여년간 추진해온 생산설비 감축과 물류 효율화 결과 전국의 정유시설은 1995년 44곳에서 2011년에는 27곳으로 40%가량 줄고 같은 기간 탱크로리는 1만8,000대에서 7,000대로 대폭 감소했다. 특히 각 회사들이 석유소비가 많은 수도권으로 정유시설을 집중시키면서 동북 6개현에 남은 정유시설은 사실상 센다이 한 곳, 동해 인근의 서부 지역에도 단 한 곳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대지진으로 태평양 연안의 정유시설 조업이 상당 부분 중단되자 수도권과 재해 지역에 신속히 기름을 공급해줄 '백업'이 부족했던 것은 그 때문이라고 니혼게이자이는 설명했다. 제한송전의 혼란 역시 초유의 사태를 맞아 매뉴얼 없이 사태를 수습하려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니혼게이자이는 도쿄전력이 전력 이용자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전력공급을 중단시킨 결과 주요 업종이나 의료기관ㆍ교통기관 등 주요 시설까지 정전사태에 시달리며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도쿄전력은 또 지역 내 일부만 정전이 되는 경우 아예 제한송전 발표 내용에서 빼버리는 등 실책을 거듭했다. 이밖에 위기사태에서 드러난 정부의 허술한 위기관리 역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톱다운' 방식에 집착한 결과다. 상명하달의 부작용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전날에 이미 준비를 마친 원전 살수가 다음날 오후가 되도록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총리가 원전에만 매달리면서 재해 지역의 이재민 지원은 뒷전으로 밀렸다. 정부와 민주당 내 위기대응 조직이 난립하면서 촌각을 다투는 '실행'이 중요한 시점에 회의만 수십차례 열리고 관리들은 회의 준비에 쫓기기 일쑤다. 니혼게이자이는 "대지진에 대한 대응은 민주당 정권의 위기관리 허점을 그대로 드러낸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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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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